혼자 읽기 아까와서 퍼왔습니다.
출처는 서프라이즈 입니다.
http://www1.seoprise.com/victory/bbs.php?table=nozzang_du0280&query=view&uid=485&p=1
다음 글은 정치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정치 얘기가 아닙니다.
현재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현상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글입니다.
우리나라는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근본적으로 정말 고칠 수 있을까 고민해보신 분들은
지루해도 차근차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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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 별건 아니지만, 실은 엄청나게 바뀐 세상에 살고 있다"
2003년12월19일
< 개혁, 파이(pie)를 나누는 룰(rule)의 정립 >
권력이란 무엇인가. 여러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자원의 배분권한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 자원은 자리나 이권, 돈 등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최고의 권한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허공에 뜬 구름 잡는 식의 꿈에 부풀어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작년 민주당 국민경선국면에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당시 노무현 고문의 부상(浮上)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관점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것은 확실히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에서 볼 때, 낡은 정치의 패러다임이 새로운 정치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리고 변화의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이러한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세력들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해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결코 쉽게 이뤄지는 것일 리 없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이러한 전환은 급격한 형태가 아니라 시민혁명적인, 보다 완만한 모습을 띠고 있어, 때로는 이러한 전환과정에서 생기는 진통으로 인해 답답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이를테면 개혁통(痛), 개혁피로증을 앓고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패러다임의 전환의 첫 결과물인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개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인가. 성과는 있는 것인가. 개혁이란 도대체 뭔가.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세력이란 뭔가. 도대체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 세상이 더 혼란스러워만 보이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혹은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한 수구언론이 모든 것을 정쟁(政爭)의 관점으로만 몰아가, 우리가 정치에 너무 매몰돼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은,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개혁을 위해 지난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제 시간, 제 돈을 아무런 대가 없이 몽땅 투자했던 보통의 생활인에게는 정말 절박한 질문일 수도 있다. 무엇을 위해 우리는 즉각적이고 물질적인 보상 없는 헌신을 택했던 것인가. 도대체 ‘변하고 있는 그 무엇’이란 어떤 것인가. 수구언론들이 보도를 하지 않고 있어서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인가.
필자가 앞서 권력이 갖고 있는 여러 의미론적 차원을 무시하고 일단 자원의 배분권으로 규정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적폐(積弊)가 바로 자원의 배분권이 갖고 있는 대단히 불공정한 특성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자원 배분은 규칙이나 법률, 혹은 사회적 합의 과정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큰 틀에서 보면, 자원 배분은 최고권력자가 ’지 꼴리는대로’ 해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자원의 자의적인 배분, 이것이야말로 개혁의 제1대상이었던 것이다.
최고권력자가 자원 배분을 제맘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권력의 주변에는 자원을 탐하는 자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고, 수많은 부정부패를 양산했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는 물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지역감정, 혹은 지역 소외란 말은 바로 자원배분에서의 소외를 의미했다.
호남의 지역감정은, 광주민주화항쟁이 하나의 계기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훨씬 이전부터 이미 호남은 자원배분에서 극심하게 소외돼 왔고, 그러한 소외의 극점에서 터진 것이 바로 광주민주화항쟁이라고 볼 수 있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박정희부터 김영삼까지 면면을 보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들은 모두 영남사람들이다. 영남 패권주의란 말도 근원을 찾아 올라가 보면, 자원배분에서의 소외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점을 부인키 어렵다.
< 자원 배분 측면에서 본 김대중 정권 출범의 공과 >
최고권력자가 자원을 제 멋대로 배분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최고권력자 주변에서 기생하는 세력들도 자연스럽게 최고권력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거나 기타 등등의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권력층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지금 이들은 재벌이나 수구언론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지연과 교차혼인 등을 통한 혈연, 학연 등 특정한 인간관계를 이용해 하나의 기득권 세력을 형성했다.
이들이 세상의 변화를 원할 리가 없다. 세상의 변화란 바로 자원배분의 관행을 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재벌이 단순히 한나라당의 공갈 때문에 수백억원의 정치자금을 당시 이회창 후보에게 갖다바친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야 말로, 최고권력자가 제맘대로 자원을 배분한다는 관행을 깨지 않고, 이를 통해 그들의 기득권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그들은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고권력자가 갖고 있는 자원의 범위는 대단히 방대하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97년 대통령선거에 앞서, 필자가 참석했던 기자들과의 한 모임에서, “여러 동지들이 도와줘서 고맙다. 대통령이 되면 이 은혜는 잊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면 임명할 수 있는 자리는 수천개에 달한다”는 취지의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물론 기자들에게 모두 한자리 주겠다는 의미로 한 얘기는 아니었을 것이다(우선 필자부터 전혀 그런 혜택(?)을 받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사사로운 자리에서 하는 덕담 수준의 얘기였다. 또한 원천적으로 기자들이 그런 자리를 배분받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되기 전에 어떤 사람이든 그는 정치인이며, 정치지도자인 그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로 정당을 만들어 최고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그들의 지도자와 함께 싸우고 함께 땀을 흘렸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나 당직자들이 바로 그들이며, 그들의 입김이 대통령에게 작용해 그 방대한 자원을 나누고 관리하는데 손발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제멋대로의 자원 배분. 그 권한을 지니고 있는 대통령.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갈래의 집단. 이것이 기득권의 실체이며, 현재 우리 사회의 기득권력은 바로 이러한 관행 속에서 만들어져 온, 정말로 대적하기 어려운 집단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싸움은 어렵기 짝이 없는 것이다.
자, 그러면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 박정희 이후 김영삼시대까지 기득권력은 영남패권주의란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영남 출신의 대통령, 당연히 영남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권력집단. 거기에 기생한 영남 기반의 재벌. 이들을 옹호하면서 몸집을 키워온 수구언론. 이 모든 수구기득권집단은 김영삼시대까지는 순조로운 항해를 거듭해 왔다. 이런 면에서 김대중 시대의 출범은, 이러한 관행을 깨는 출발점이었다. 호남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호남출신들의 권력집단이 출범함으로써, 영남패권주의에는 어떤 형식으로든지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노무현 정권을 출범시킨 씨앗은, 바로 김대중 정권의 공과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김종필씨를 끌어들여 DJP연합으로 집권했건, 이인제씨의 경선불복후 독자출마에 따른 영남표 분산 때문에 집권했건, 어떻든 호남 권력집단이 출발했다는 것 자체는 영남패권주의를 붕괴시키는 출발점이 됐으며, 영남과 호남의 권력교체를 통해 특정지역에 편중된 자원배분을 시정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 바로 순수하게 자원배분적 측면에서 볼 때 김대중 정권 출범의 공(功)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過)는 무엇인가. 김대중 정권의 과는 자원배분의 주체만 바꿔놓았을 뿐, 자원의 자의적인 배분과정은 전혀 바꾸지 못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이 공과문제는 대단히 중요한데, 공과 과 가운데에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김대중 정권을 보는 평가적 시각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자의적인 자원 배분이 2000년 총선 패배를 불러일으켰다 >
우선 잘못된 부분부터 설명해 보자. 김대중 정권의 자원배분은 원천적으로 문제를 노정하고 있었다. DJP연합정권의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자원배분은 우선 김대중 당시 대통령(DJ)과 김종필 당시 총리(JP)간의 나눠먹기 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배분비율인데, 김종필 당시 총리 측에서는 아마도 5대5나, 6대4 정도를 요구했을 것이고, 상층부에서는 어느 정도 이 비율이 지켜지기도 했으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이러한 비율은 DJ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듣기로는 거의 9대1수준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JP 쪽에서 반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자원배분의 다툼은 결국 내각제 개헌 합의의 무산을 계기로 두 진영의 분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자원배분방식의 자의성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것은 두고 두고 김대중 정권의 짐으로 작용했다. 권력집단만 영남에서 호남으로 바뀌었을 뿐 배분방식은 전혀 공정치 못한, 제멋대로 방식,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시절, 예컨대 특정 시기의 군부 인사를 할 때 9명의 군단장급 승진자 가운데 6명이 호남출신이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던가. 김대중 정권의 권력실세들이 저마다 한자리씩 자신과 관련 있는 인사의 승진을 원했기 때문이고, 권력실세들은 자원배분을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권한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제멋대로란 방식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군부 인사 뿐 아니라 경찰 인사,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국정원 인사, 정부투자기관 혹은 공기업 등의 인사 등 우리 사회를 좌우하는 중요한 자리의 배분과정 역시 대동소이했다. 자, 이런 것이 어떤 문제를 낳았을까. 수십년간 형성된 기득권집단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다는 얘기다. 필자가 인사문제를 김대중 정권의 몰락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고 있는 것도 결국 이런 맥락에서다.
왜냐하면 권력상층부의 자의적인 배분은 그보다 아랫쪽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결국에는 말단 조직에까지 그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은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다. 또한 각각의 자리에서 비롯되는 이권의 배분 역시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정권에서는 도급순위 1만등에도 들지 못했던 호남의 조그만 건설업체가 갑자기 수천등 수만등 순위상승을 가져왔다는 얘기 등은 이러한 본질의 현실적 발현일 뿐이다. 따라서 기득권 집단의 반발은 대단히 부당한 것이었지만, 그리고 비합리적인 것이었지만, 호남 이외의 지역에는 호소력을 지닐 수 있게끔 됐던 것이다. 그것은 2000년 선거의 민주당 참패로 나타났다.
호남정권의 출범과, 그것이 갖고 있는 지역차별적 역사의 타파란 점에 의미를 둔다면, 이러한 민심은 정말로 민주당과 호남, 그리고 김대중 정권에게는 대단히 억울한 일이며, 부당한 대접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논란이 진행중인 지역차별론은 결국 김대중 정권의 공과 가운데 어느쪽에 포인트를 두느냐에 따라 현저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역차별 철폐와 관련한 실험은 아직도 노무현 정권을 통해 현재진행중인 상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 자체에는 공도 있고, 과도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과, 즉 잘못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한 노무현 정권은, 그야말로 진정한 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 자원배분의 자의성, 즉 제멋대로의 분배에서 시스템에 의한 분배로 이전되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김대중 정권의 탄생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김대중 정권의 잘못도 단순히 그 시점만으로 한정해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이 김대중 정권의 계승자라고 하는데는 여러가지 의미가 들어있지만, 이 자원배분에 대한 시스템 정비야말로, 김대중 정권이 시작한 상징적인 지역차별 철폐란 공에서 출발해 이제 본질적인 문제로 접근하는 상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권의 시스템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 자원배분의 자의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특징이다. 지금 고급관료들은 물론이고, 공기업체의 임직원, 군부 경찰 국정원 등 대통령이 입김을 직접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자리의 배분이 과거 정권과는 현격한 차별성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 눈에 즉각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 낡은 시스템의 근간을 허무는 혁명적인 변화다. 청와대 인사보좌관실이 인사수석실로 승격된 것도 이러한 혁명적인 변화가 바깥으로 표출된 결과다.
낡은 패러다임에 아직도 익숙한 노무현 정권 주변의 인사들이 “이럴려면 정권은 왜 잡았느냐”는 푸념이 나오는 것도, 과거에는 자신의 입김에 의해 많은 사람들을 임명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제멋대로 할 수 없는 권력, 과거처럼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최소한 권력창출에 공이 있다고 생각하는 집단들에게는 말이다. 대통령의 주변 권력집단의 개인에 대한 충성심의 강도가 과거와는 현격하게 줄어든 것도, 충성의 대가인 권력의 자의적 배분에 따른 이익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 대통령 권력의 축소에 기득권집단이 저항하는 모순적 행위의 이유 >
필자가 만난 국정원, 군, 검찰, 경찰 등 이른바 우리 사회 권력집단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중견멤버들은 이구동성으로 “과거처럼 대통령이, 혹은 권력실세가 나눠먹는 식의 인사는 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뿐만 아니다. 철도청의 한 고위관리는 “과거 명절 때면 새마을호 예매권 수천장이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기관 쪽으로 흘러들어갔지만, 노무현 정권 이후 그런 관행은 언제 있었더냐는 식으로 사라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익을 천문학적으로 남기는 중요한 공기업체 임원 역시 “명절 때면 상품권 수만장을 갖다바칠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자원배분 시스템이 위로부터 변화를 겪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국민경선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듯이, 과거처럼 최고권력자가 정말로 개혁적인 인사들을 낙하산 공천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듯이, 권력집단의 입김이 사라지고 있는 이러한 인사관행이 처음부터 끝까지 올바른 것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과거와 현재가 혼재해 있는 상황에서, 여러가지 시행착오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자원배분이 권력자나 권력집단의 자의에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화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기득권력의 기득권 유지가 우선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과거 기득권 집단은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권력에 줄을 대어, 과거 누려왔던 기득권을 계속 누리려 시도해 왔었다. 그것이 자원배분의 자의성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 지금 깨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원배분의 시스템이 공정하게 이뤄진다는 것. 그것은 기득권력을 깨는 출발점이다. 하지만 대통령 주변의 권력집단도 그러하고,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대통령보다 더한 권력으로 인식되는 의회독재권력은 그보다 수십배 더한 강도로 이러한 공정한 배분으로의 변화에 반발하고 있다. 그것은 곧 그들의 권력 축소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다음 편에서 세세하게 다루겠지만, 이런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의원들 간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반문에 답변할 길이 없다.
열린우리당은 최소한 그러한 자신들의 권력 축소에 동의한 사람들의 집단이며, 이미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자원배분의 공정성 확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결의를 지닌 사람들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그러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열린우리당의 집단 존재 이유는 바로 이것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그 소속원마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그리고 한나라당은 분명히 다르다.
내년 총선을 단순히 지역을 가르는 정치공학적 견지에서만 볼 수 없는 것은, 이러한 변화는 정치인들이나 수구언론들이 아무리 숨기려 애를 써도, 이해관계에 있는 국민 다수는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한줌도 안되는 수구기득권집단들의 집중된 권력을, 자원배분의 시스템화를 통해, 보통사람들의 능력과 환경 등을 고려해 공평하게 나눠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개혁을, 한줌도 안되는 기득권집단을 대변하는 수구집단 한나라당과, 수구언론 조선일보가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소통과정을 독점해 왔던 시대도 인터넷으로 인해 분산되고 있다. 다음 총선 결과를 낡은 패러다임에 입각해서 재단하려는 시각의 치명적 약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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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여기까지 힘들게 읽으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보너스 나갑니다. 디시인사이드에서 퍼왔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다시 봐도 재밌는 그림 모음입니다. ^^
http://dc3.donga.com/zero/view.php?id=hit&page=1&sn1=&divpage=1&banner=&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693&PHPSESSID=dadbc8eaff6c1558ef169cd5e297b803
출처는 서프라이즈 입니다.
http://www1.seoprise.com/victory/bbs.php?table=nozzang_du0280&query=view&uid=485&p=1
다음 글은 정치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정치 얘기가 아닙니다.
현재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현상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글입니다.
우리나라는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근본적으로 정말 고칠 수 있을까 고민해보신 분들은
지루해도 차근차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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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 별건 아니지만, 실은 엄청나게 바뀐 세상에 살고 있다"
2003년12월19일
< 개혁, 파이(pie)를 나누는 룰(rule)의 정립 >
권력이란 무엇인가. 여러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자원의 배분권한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 자원은 자리나 이권, 돈 등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최고의 권한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허공에 뜬 구름 잡는 식의 꿈에 부풀어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작년 민주당 국민경선국면에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당시 노무현 고문의 부상(浮上)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관점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것은 확실히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에서 볼 때, 낡은 정치의 패러다임이 새로운 정치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리고 변화의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이러한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세력들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해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결코 쉽게 이뤄지는 것일 리 없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이러한 전환은 급격한 형태가 아니라 시민혁명적인, 보다 완만한 모습을 띠고 있어, 때로는 이러한 전환과정에서 생기는 진통으로 인해 답답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이를테면 개혁통(痛), 개혁피로증을 앓고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패러다임의 전환의 첫 결과물인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개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인가. 성과는 있는 것인가. 개혁이란 도대체 뭔가.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세력이란 뭔가. 도대체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 세상이 더 혼란스러워만 보이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혹은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한 수구언론이 모든 것을 정쟁(政爭)의 관점으로만 몰아가, 우리가 정치에 너무 매몰돼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은,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개혁을 위해 지난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제 시간, 제 돈을 아무런 대가 없이 몽땅 투자했던 보통의 생활인에게는 정말 절박한 질문일 수도 있다. 무엇을 위해 우리는 즉각적이고 물질적인 보상 없는 헌신을 택했던 것인가. 도대체 ‘변하고 있는 그 무엇’이란 어떤 것인가. 수구언론들이 보도를 하지 않고 있어서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인가.
필자가 앞서 권력이 갖고 있는 여러 의미론적 차원을 무시하고 일단 자원의 배분권으로 규정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적폐(積弊)가 바로 자원의 배분권이 갖고 있는 대단히 불공정한 특성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자원 배분은 규칙이나 법률, 혹은 사회적 합의 과정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큰 틀에서 보면, 자원 배분은 최고권력자가 ’지 꼴리는대로’ 해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자원의 자의적인 배분, 이것이야말로 개혁의 제1대상이었던 것이다.
최고권력자가 자원 배분을 제맘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권력의 주변에는 자원을 탐하는 자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고, 수많은 부정부패를 양산했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는 물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지역감정, 혹은 지역 소외란 말은 바로 자원배분에서의 소외를 의미했다.
호남의 지역감정은, 광주민주화항쟁이 하나의 계기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훨씬 이전부터 이미 호남은 자원배분에서 극심하게 소외돼 왔고, 그러한 소외의 극점에서 터진 것이 바로 광주민주화항쟁이라고 볼 수 있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박정희부터 김영삼까지 면면을 보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들은 모두 영남사람들이다. 영남 패권주의란 말도 근원을 찾아 올라가 보면, 자원배분에서의 소외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점을 부인키 어렵다.
< 자원 배분 측면에서 본 김대중 정권 출범의 공과 >
최고권력자가 자원을 제 멋대로 배분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최고권력자 주변에서 기생하는 세력들도 자연스럽게 최고권력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거나 기타 등등의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권력층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지금 이들은 재벌이나 수구언론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지연과 교차혼인 등을 통한 혈연, 학연 등 특정한 인간관계를 이용해 하나의 기득권 세력을 형성했다.
이들이 세상의 변화를 원할 리가 없다. 세상의 변화란 바로 자원배분의 관행을 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재벌이 단순히 한나라당의 공갈 때문에 수백억원의 정치자금을 당시 이회창 후보에게 갖다바친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야 말로, 최고권력자가 제맘대로 자원을 배분한다는 관행을 깨지 않고, 이를 통해 그들의 기득권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그들은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고권력자가 갖고 있는 자원의 범위는 대단히 방대하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97년 대통령선거에 앞서, 필자가 참석했던 기자들과의 한 모임에서, “여러 동지들이 도와줘서 고맙다. 대통령이 되면 이 은혜는 잊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면 임명할 수 있는 자리는 수천개에 달한다”는 취지의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물론 기자들에게 모두 한자리 주겠다는 의미로 한 얘기는 아니었을 것이다(우선 필자부터 전혀 그런 혜택(?)을 받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사사로운 자리에서 하는 덕담 수준의 얘기였다. 또한 원천적으로 기자들이 그런 자리를 배분받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되기 전에 어떤 사람이든 그는 정치인이며, 정치지도자인 그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로 정당을 만들어 최고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그들의 지도자와 함께 싸우고 함께 땀을 흘렸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나 당직자들이 바로 그들이며, 그들의 입김이 대통령에게 작용해 그 방대한 자원을 나누고 관리하는데 손발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제멋대로의 자원 배분. 그 권한을 지니고 있는 대통령.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갈래의 집단. 이것이 기득권의 실체이며, 현재 우리 사회의 기득권력은 바로 이러한 관행 속에서 만들어져 온, 정말로 대적하기 어려운 집단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싸움은 어렵기 짝이 없는 것이다.
자, 그러면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 박정희 이후 김영삼시대까지 기득권력은 영남패권주의란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영남 출신의 대통령, 당연히 영남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권력집단. 거기에 기생한 영남 기반의 재벌. 이들을 옹호하면서 몸집을 키워온 수구언론. 이 모든 수구기득권집단은 김영삼시대까지는 순조로운 항해를 거듭해 왔다. 이런 면에서 김대중 시대의 출범은, 이러한 관행을 깨는 출발점이었다. 호남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호남출신들의 권력집단이 출범함으로써, 영남패권주의에는 어떤 형식으로든지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노무현 정권을 출범시킨 씨앗은, 바로 김대중 정권의 공과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김종필씨를 끌어들여 DJP연합으로 집권했건, 이인제씨의 경선불복후 독자출마에 따른 영남표 분산 때문에 집권했건, 어떻든 호남 권력집단이 출발했다는 것 자체는 영남패권주의를 붕괴시키는 출발점이 됐으며, 영남과 호남의 권력교체를 통해 특정지역에 편중된 자원배분을 시정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 바로 순수하게 자원배분적 측면에서 볼 때 김대중 정권 출범의 공(功)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過)는 무엇인가. 김대중 정권의 과는 자원배분의 주체만 바꿔놓았을 뿐, 자원의 자의적인 배분과정은 전혀 바꾸지 못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이 공과문제는 대단히 중요한데, 공과 과 가운데에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김대중 정권을 보는 평가적 시각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자의적인 자원 배분이 2000년 총선 패배를 불러일으켰다 >
우선 잘못된 부분부터 설명해 보자. 김대중 정권의 자원배분은 원천적으로 문제를 노정하고 있었다. DJP연합정권의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자원배분은 우선 김대중 당시 대통령(DJ)과 김종필 당시 총리(JP)간의 나눠먹기 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배분비율인데, 김종필 당시 총리 측에서는 아마도 5대5나, 6대4 정도를 요구했을 것이고, 상층부에서는 어느 정도 이 비율이 지켜지기도 했으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이러한 비율은 DJ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듣기로는 거의 9대1수준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JP 쪽에서 반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자원배분의 다툼은 결국 내각제 개헌 합의의 무산을 계기로 두 진영의 분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자원배분방식의 자의성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것은 두고 두고 김대중 정권의 짐으로 작용했다. 권력집단만 영남에서 호남으로 바뀌었을 뿐 배분방식은 전혀 공정치 못한, 제멋대로 방식,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시절, 예컨대 특정 시기의 군부 인사를 할 때 9명의 군단장급 승진자 가운데 6명이 호남출신이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던가. 김대중 정권의 권력실세들이 저마다 한자리씩 자신과 관련 있는 인사의 승진을 원했기 때문이고, 권력실세들은 자원배분을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권한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제멋대로란 방식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군부 인사 뿐 아니라 경찰 인사,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국정원 인사, 정부투자기관 혹은 공기업 등의 인사 등 우리 사회를 좌우하는 중요한 자리의 배분과정 역시 대동소이했다. 자, 이런 것이 어떤 문제를 낳았을까. 수십년간 형성된 기득권집단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다는 얘기다. 필자가 인사문제를 김대중 정권의 몰락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고 있는 것도 결국 이런 맥락에서다.
왜냐하면 권력상층부의 자의적인 배분은 그보다 아랫쪽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결국에는 말단 조직에까지 그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은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다. 또한 각각의 자리에서 비롯되는 이권의 배분 역시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정권에서는 도급순위 1만등에도 들지 못했던 호남의 조그만 건설업체가 갑자기 수천등 수만등 순위상승을 가져왔다는 얘기 등은 이러한 본질의 현실적 발현일 뿐이다. 따라서 기득권 집단의 반발은 대단히 부당한 것이었지만, 그리고 비합리적인 것이었지만, 호남 이외의 지역에는 호소력을 지닐 수 있게끔 됐던 것이다. 그것은 2000년 선거의 민주당 참패로 나타났다.
호남정권의 출범과, 그것이 갖고 있는 지역차별적 역사의 타파란 점에 의미를 둔다면, 이러한 민심은 정말로 민주당과 호남, 그리고 김대중 정권에게는 대단히 억울한 일이며, 부당한 대접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논란이 진행중인 지역차별론은 결국 김대중 정권의 공과 가운데 어느쪽에 포인트를 두느냐에 따라 현저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역차별 철폐와 관련한 실험은 아직도 노무현 정권을 통해 현재진행중인 상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 자체에는 공도 있고, 과도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과, 즉 잘못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한 노무현 정권은, 그야말로 진정한 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 자원배분의 자의성, 즉 제멋대로의 분배에서 시스템에 의한 분배로 이전되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김대중 정권의 탄생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김대중 정권의 잘못도 단순히 그 시점만으로 한정해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이 김대중 정권의 계승자라고 하는데는 여러가지 의미가 들어있지만, 이 자원배분에 대한 시스템 정비야말로, 김대중 정권이 시작한 상징적인 지역차별 철폐란 공에서 출발해 이제 본질적인 문제로 접근하는 상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권의 시스템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 자원배분의 자의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특징이다. 지금 고급관료들은 물론이고, 공기업체의 임직원, 군부 경찰 국정원 등 대통령이 입김을 직접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자리의 배분이 과거 정권과는 현격한 차별성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 눈에 즉각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 낡은 시스템의 근간을 허무는 혁명적인 변화다. 청와대 인사보좌관실이 인사수석실로 승격된 것도 이러한 혁명적인 변화가 바깥으로 표출된 결과다.
낡은 패러다임에 아직도 익숙한 노무현 정권 주변의 인사들이 “이럴려면 정권은 왜 잡았느냐”는 푸념이 나오는 것도, 과거에는 자신의 입김에 의해 많은 사람들을 임명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제멋대로 할 수 없는 권력, 과거처럼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최소한 권력창출에 공이 있다고 생각하는 집단들에게는 말이다. 대통령의 주변 권력집단의 개인에 대한 충성심의 강도가 과거와는 현격하게 줄어든 것도, 충성의 대가인 권력의 자의적 배분에 따른 이익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 대통령 권력의 축소에 기득권집단이 저항하는 모순적 행위의 이유 >
필자가 만난 국정원, 군, 검찰, 경찰 등 이른바 우리 사회 권력집단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중견멤버들은 이구동성으로 “과거처럼 대통령이, 혹은 권력실세가 나눠먹는 식의 인사는 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뿐만 아니다. 철도청의 한 고위관리는 “과거 명절 때면 새마을호 예매권 수천장이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기관 쪽으로 흘러들어갔지만, 노무현 정권 이후 그런 관행은 언제 있었더냐는 식으로 사라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익을 천문학적으로 남기는 중요한 공기업체 임원 역시 “명절 때면 상품권 수만장을 갖다바칠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자원배분 시스템이 위로부터 변화를 겪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국민경선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듯이, 과거처럼 최고권력자가 정말로 개혁적인 인사들을 낙하산 공천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듯이, 권력집단의 입김이 사라지고 있는 이러한 인사관행이 처음부터 끝까지 올바른 것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과거와 현재가 혼재해 있는 상황에서, 여러가지 시행착오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자원배분이 권력자나 권력집단의 자의에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화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기득권력의 기득권 유지가 우선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과거 기득권 집단은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권력에 줄을 대어, 과거 누려왔던 기득권을 계속 누리려 시도해 왔었다. 그것이 자원배분의 자의성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 지금 깨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원배분의 시스템이 공정하게 이뤄진다는 것. 그것은 기득권력을 깨는 출발점이다. 하지만 대통령 주변의 권력집단도 그러하고,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대통령보다 더한 권력으로 인식되는 의회독재권력은 그보다 수십배 더한 강도로 이러한 공정한 배분으로의 변화에 반발하고 있다. 그것은 곧 그들의 권력 축소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다음 편에서 세세하게 다루겠지만, 이런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의원들 간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반문에 답변할 길이 없다.
열린우리당은 최소한 그러한 자신들의 권력 축소에 동의한 사람들의 집단이며, 이미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자원배분의 공정성 확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결의를 지닌 사람들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그러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열린우리당의 집단 존재 이유는 바로 이것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그 소속원마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그리고 한나라당은 분명히 다르다.
내년 총선을 단순히 지역을 가르는 정치공학적 견지에서만 볼 수 없는 것은, 이러한 변화는 정치인들이나 수구언론들이 아무리 숨기려 애를 써도, 이해관계에 있는 국민 다수는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한줌도 안되는 수구기득권집단들의 집중된 권력을, 자원배분의 시스템화를 통해, 보통사람들의 능력과 환경 등을 고려해 공평하게 나눠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개혁을, 한줌도 안되는 기득권집단을 대변하는 수구집단 한나라당과, 수구언론 조선일보가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소통과정을 독점해 왔던 시대도 인터넷으로 인해 분산되고 있다. 다음 총선 결과를 낡은 패러다임에 입각해서 재단하려는 시각의 치명적 약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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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여기까지 힘들게 읽으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보너스 나갑니다. 디시인사이드에서 퍼왔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다시 봐도 재밌는 그림 모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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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