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소유와 만족
1. 시간과 공간
우리 모두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가지 요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고 있고, 아무도 그것들을 초월할 수 없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시공’의 제약을 받기도 하고
동시에 ‘시공’의 혜택을 누리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 중 대부분은 ‘시간’이라는 인자를 무심하게 대하면서도
‘공간’이라는 인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의 생활터전인 직장의 위치, 가옥의 크기, 그 공간을 채우는
물건들과 그 것들이 차지하는 또 다른 공간들...
생활필수품이든 취미생활을 위한 물건이든 우리는 공간을 차지하는
여러 물건들을 소유하고 산다.
우리가 시간보다 공간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필시
‘공간’은 가시적이라 우선 눈에 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시간’과 관련이 없어지고 나면 ‘공간’도 무의미해지고 만다.
‘시간’과 ‘공간’ 중 꼭 어느 것이 우선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시간'을 택할 것이다.
2. 소유와 만족
우리가 어떤 것을 소유하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란 대부분 만족할 줄 모르므로
소유에 대한 바람 또한 끝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오디오 쟁이 들의 놀이기구(?)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우리가 오디오를 바꿈질(업그레이드 혹은 옆 그레이드)하는
까닭은 무엇이며, 그 끝은 도대체 어디인가?
오디오를 마련하는 것은 음악을 듣기 위한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에
음악을 보다 음악답게 듣기 위하여 오디오 기기를 바꾼다.
그러나 꼭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이 여기서도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필요한데
우선순위가 정해지지 않으면 끝없는 방황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음악이 우선이며, 기기란 음악을 즐기기 위한 도구로
그 다음의 것이다.
기기를 통하여 음악을 듣는 것으로 누리는 만족,
그 근원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자.
사람의 삶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예로 거의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더라도 지금 그가 몹시 목이 마르면
다른 것들을 다 제쳐두고 물을 찾는다.
그리고 물을 흡족히 취하는 것으로 그는 만족한다.
사람이 누리는 만족과 그 행복은 갈급함과 비례한다.
음악에 몹시 목마른 한 사람이 어느 날
라디오 한 대를 구하여 음악을 듣는 만족과 행복을
어느 정도의 기기를 갖춘 사람이 보다 나은 소리를 듣기 위하여
더 낫다고 생각되는 기기를 구하여 그것을 통하여 음악을 들으므로
느끼는 만족을 비교 한다면 어느 것이 더 크겠는가?
음악에 대한 갈급함과 음악사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떤 좋은 기기를 소유한다 해도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은 배고픈 사람이며,
배부른 사람에게는 산해진미도 별 반갑지 않은 법이다.
힘든 농사일 중에 밭둑에 앉아 보리가 적당히 섞인 밥에다
이런저런 반찬과 고추장 한 숟갈 넣어 양푼에다 쓱쓱 비벼 먹는 맛이
고급 식당에서 멋진 그릇에 담아 먹는 음식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식사를 할 때, 각 영양소를 분석하고
그 함량을 전자저울에 달아 식사를 한다면 무슨 맛이 있겠으며,
몇 헤르츠, 어떤 주파수대역을 살피고 소리를 분석해가며
음악을 듣는다면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3. 득도의 경지
음악에 대한 갈급함과 음악사랑보다 기기에 대한 집착이 지나쳐
기기 바꿈질 일삼던 이가 어느 날 리시버와 어울리는 스피커,
적당한 소스기기 등 단출한 오디오로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내가 진정한 음악사랑을 소유하여
음악사랑이 기기에 대한 집착을 뛰어 넘을 때,
어디까지나 음악이 주인이고 기기가 종임을 깨달아
오디오란 음악을 재생하는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때,
기기에게 소유당하지 않고 내가 오히려 기기를 소유하는 삶,
그 보다 앞서 음악사랑이 가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때
비로소 득도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2002. 7. 29.
1. 시간과 공간
우리 모두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가지 요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고 있고, 아무도 그것들을 초월할 수 없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시공’의 제약을 받기도 하고
동시에 ‘시공’의 혜택을 누리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 중 대부분은 ‘시간’이라는 인자를 무심하게 대하면서도
‘공간’이라는 인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의 생활터전인 직장의 위치, 가옥의 크기, 그 공간을 채우는
물건들과 그 것들이 차지하는 또 다른 공간들...
생활필수품이든 취미생활을 위한 물건이든 우리는 공간을 차지하는
여러 물건들을 소유하고 산다.
우리가 시간보다 공간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필시
‘공간’은 가시적이라 우선 눈에 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시간’과 관련이 없어지고 나면 ‘공간’도 무의미해지고 만다.
‘시간’과 ‘공간’ 중 꼭 어느 것이 우선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시간'을 택할 것이다.
2. 소유와 만족
우리가 어떤 것을 소유하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란 대부분 만족할 줄 모르므로
소유에 대한 바람 또한 끝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오디오 쟁이 들의 놀이기구(?)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우리가 오디오를 바꿈질(업그레이드 혹은 옆 그레이드)하는
까닭은 무엇이며, 그 끝은 도대체 어디인가?
오디오를 마련하는 것은 음악을 듣기 위한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에
음악을 보다 음악답게 듣기 위하여 오디오 기기를 바꾼다.
그러나 꼭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이 여기서도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필요한데
우선순위가 정해지지 않으면 끝없는 방황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음악이 우선이며, 기기란 음악을 즐기기 위한 도구로
그 다음의 것이다.
기기를 통하여 음악을 듣는 것으로 누리는 만족,
그 근원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자.
사람의 삶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예로 거의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더라도 지금 그가 몹시 목이 마르면
다른 것들을 다 제쳐두고 물을 찾는다.
그리고 물을 흡족히 취하는 것으로 그는 만족한다.
사람이 누리는 만족과 그 행복은 갈급함과 비례한다.
음악에 몹시 목마른 한 사람이 어느 날
라디오 한 대를 구하여 음악을 듣는 만족과 행복을
어느 정도의 기기를 갖춘 사람이 보다 나은 소리를 듣기 위하여
더 낫다고 생각되는 기기를 구하여 그것을 통하여 음악을 들으므로
느끼는 만족을 비교 한다면 어느 것이 더 크겠는가?
음악에 대한 갈급함과 음악사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떤 좋은 기기를 소유한다 해도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은 배고픈 사람이며,
배부른 사람에게는 산해진미도 별 반갑지 않은 법이다.
힘든 농사일 중에 밭둑에 앉아 보리가 적당히 섞인 밥에다
이런저런 반찬과 고추장 한 숟갈 넣어 양푼에다 쓱쓱 비벼 먹는 맛이
고급 식당에서 멋진 그릇에 담아 먹는 음식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식사를 할 때, 각 영양소를 분석하고
그 함량을 전자저울에 달아 식사를 한다면 무슨 맛이 있겠으며,
몇 헤르츠, 어떤 주파수대역을 살피고 소리를 분석해가며
음악을 듣는다면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3. 득도의 경지
음악에 대한 갈급함과 음악사랑보다 기기에 대한 집착이 지나쳐
기기 바꿈질 일삼던 이가 어느 날 리시버와 어울리는 스피커,
적당한 소스기기 등 단출한 오디오로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내가 진정한 음악사랑을 소유하여
음악사랑이 기기에 대한 집착을 뛰어 넘을 때,
어디까지나 음악이 주인이고 기기가 종임을 깨달아
오디오란 음악을 재생하는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때,
기기에게 소유당하지 않고 내가 오히려 기기를 소유하는 삶,
그 보다 앞서 음악사랑이 가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때
비로소 득도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2002. 7. 29.
아주 끝내주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