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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한 사랑

 

 

배홍배 수필

 

 

  그녀처럼 예쁘게 생긴 인켈 미니컴포넌트에선 막스 부르흐의 관현악곡 스코틀랜드 환상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문과 대학생인 그녀의 자취방엔 스코틀랜드의 서북부 헤브리디스 제도의 황량한 풍경 사진 한 장이 걸려있었다. 그녀가 커피를 타왔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내 눈을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눈 속을. 짙은 어두운 녹색의 눈동자 속, 안개 자욱한 해안가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그녀의 눈 속에서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고 아른아른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긴 붉은 머리로 눈을 가리고 얼굴을 돌렸다. 그녀는 어쩌면 스코틀랜드의 원주민 켈트족의 후예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앵글로색슨족에 밀려난 그녀의 조상이 어쩌다 이 땅에까지 흘러온 것은 아닐까. 창백하도록 흰 얼굴과 쌍꺼풀눈에 짓 푸른 깊은 눈동자

와 눈가의 작은 주근깨들, 그리고 붉은 머리와 호리호리한 키가 켈트족 여인을 연상시켰다.

 

  우리는 독서 클럽에서 만났다. 영문과 학생들로 이루어진 독서회는 매월 한 권의 책을 선정해 읽고 토론했다. 그 때 40을 막 넘은 나는 이미 번역을 해온 터여서 그 모임을 주도하고 있었다. 지금 같은 3월 어느 봄날 우린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번스가 쓴 시 Auld Rob Morris를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체가 스코틀랜드어도 조금 있고 영국의 고어체로 되어 있어서 다른 때와는 달리 여러 해석이 나왔다. 시는 스코틀랜드의 한 고을에 사는 롭 모리스란 부자 늙은이의 딸을 사랑하는 가난한 청년이 신분 차이로 인해 결혼 승낙을 받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내용이었다. 학생들은 시의 두 부분에서 독해의 차이로 시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토로했다. 첫째 연의 마지막 행 And ae bonie lass, his dautie and mine.그리고 마지막 연의 첫째 행 O had she but been of a laigher degree, (그리고 사랑스런 소녀, 그의 딸이자 나의 연인 / , 그녀가 좀 더 낮은 신분이었다면)처럼 번역되는 부분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첫 부분을 그의 딸이자 나의 딸, 두 번째를 그녀가 좀 더 높은 신분이었다면으로 해석했는데, 나의 딸로 읽으면 화자가 딸의 엄마가 된다. 그러나 본문의 화자는 청년이고, and를 연결이 아닌 독립적인 의미로 봐서 그의 딸이자 나의 연인으로 읽어야 한다. 딸과 딸이 되려면 his and my dautie로 써야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Laigher(lower)higher로 흔히들 잘못 번역하기 때문이다. 만약 첫 부분을 나의 딸로 두 번째 부분을 더 높은 신분이었다면으로 읽으면 시의 서사적 내용이 연결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지금 구글 번역기에도 나의 딸로 해석한다. 그 때 붉은 머리의 학생 또한 이 부분에서 고민했었는지 나의 설명을 듣고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독서회가 끝난 후 자신의 방에서 내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녀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스코틀랜드 환상곡 제 1악장의 주제는 바로 스코틀랜드의 민요를 개사해 로버트 번스가 쓴 시 ‘Auld Rob Morris'을 바탕으로 한 곡이다. 그녀가 나의 설명에 눈을 반짝였던 것은 이 부분 때문이었다. 그녀와 앉아 음악을 들으며 당시 내가 관심이 많았던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민속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붉은 머리 그녀는 창문 너머로 피어오르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다시 내게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 안엔 서쪽 하늘이 깊게 고여 있었다. 그녀의 눈에 고인 것은 먼 조상의 고향 하늘이었을까, 하늘에 밀려난 눈물이 눈가를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녀에게서 내게 전화가 왔다. 20살 위인 나를 형이라고 부르던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말이 없었다. 그녀의 눈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나를 자취방에 초대 했을 때 그녀의 마음은 먼 조상의 고향 스코틀랜드에 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스코틀랜드의 음반을 올릴 때마다 그곳의 차고 척박한 바람 소리를 듣는 따뜻한 귀와, 원주민들의 슬픔을 감싸주는 연민의 심장으로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진 작업도 함께 하던 나는 그녀에게 따뜻한 귀도, 연민의 심장도 아닌 메마른 렌즈를 들어 그녀를 겨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곡데 대한 설명은 영상 아래 올림

 

 

 

막스 브루흐

Max Bruch, 1838-1920

스콧틀랜드 환상곡, 작품46

서주와 제 1악장

 

 

막스 브루흐는 1838년 쾰른 출생으로 독일의

후기 낭만파 작곡가다.

음악교사이었던 어머니에게 어려서부터 음악

교육을 받은 그는 11세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고

14세에 교향곡을 써 사람들 앞에서 연주했다.

 

 

그 후 라이네케 교수로부터 사사한 뒤 1858

20세의 나이로 쾰른 음악학교의 작곡과 교수,

1891년에는 베를린 음악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 음악

박사 학위를 받은 부르흐는 프랑스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으로 추대된다.

 

 

브루흐는 이 곡을 1879년 겨울부터 다음해에

겨울이 끝날 때까지 베를린에서 작곡한다.

그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 월터 스코트의

책을 읽고 깊이 감동했는데, 41세의 부르흐는

이때 그는 영국에 관해 큰 흥미를 느끼고 이미

두 번 영국을 여행하며 자신의 곡을 연주했었다.

 

 

이 곡이 작곡될 무렵인 1880년에 그는 영국의

리버풀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되어있었으므로

작곡을 하기 위한 분위기와 소재는 충분히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부르흐는 각 악장마다 옛 스코틀랜드의 민요와

선율을 넣어, 서주와 4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바이올린과 하프와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을 썼다.

 

 

이 작품에서 하프는 독주악기와 같이 화려하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관현악의 일원으로 눈에 띌

정도로만 사용된다.

곡은 전체적으로 환상적이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을

바탕으로 능숙한 바이올린의 사용법을 보여주며,

18809월 함부르크에서 사라사테의 독주로 초연

되고 그에게 헌정되었다.

 

 

 

 

곡은 서주와 1악장이 아타카로 끊기지 않고 연결되며,

그라베,Grave의 매우 느린 E플랫단조 4/4박자 서주가

먼저 약주(p)로 쓸쓸하고도 몽환적인 울림의 저음이

서서히 일어난다.

그 위에 독주 바이올린이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를

마치 대화를 나누듯 전개하다, 3/4박자 E플랫장조의

관현악이 아다지오 칸타빌레로 노래하듯 들어오며

부드럽게 제 1악장으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약주로 이어 받는 종교적인 차분하고 아름다운 관현악

위에 독주 바이올린이 표정이 풍부한 주제를 연주한다.

이 부분의 무척 친근하고 따듯한 느낌을 주는 선율은

스코틀랜드의 민요 Auld Rob Morris(늙은 롭 모리스)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선율을 전개해 나간다.

 

 

  • ?
    섬집ㅇㅇ 2026.03.03 17:50

    배작가님의 수필 '건조한 사랑'
    찬찬히 읽었습니다.
    내용을 보니 건조한 사랑이 아니라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습기가 차오르는
    그런 사랑으로 마음에 다가옵니다.

    지금도 멋지심니다만
    그 땐 더 젊어서 훨씬 멋스러움이 가득했을 터이니
    스코틀랜드 아가씨 마음이 흔들렸겠지요.

    늘 건강 건필하시길 빕니다.

  • profile
    산촌아짐 2026.03.03 20:35
    ㅎㅎㅎ
    저도 섬시인님 말씀처럼 아름다운 사랑 으로 보입니다.
    "연민의 심장도 아닌 메마른 렌즈를 들어 그녀를 겨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메마른 렌즈라고 무심한 듯 말씀하셨지만 연민이 가득 담긴 그 ~
  • profile
    nami 2026.03.03 22:17
    항상 따뜻하신 아짐님의 말씀에 힘을 얻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 profile
    nami 2026.03.03 22:16
    오늘 오후에 손에 잡히는 대로 뽑힌 곡인데
    그와 관련된 생각이 문득 떠올라 쓴 글이나
    제목이 유치해서 다시 바꾸었습니다.
    오래 된 이야기입니다.
    늘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시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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