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선의 6대 임금 단종과 호장 엄홍도를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뜨거운 화제다.
아래의 글은 20년 전 간이역 여행을 하면서 영월의 단종 임금의 유배지 청령포를 다녀와 쓴 것이다.
그 때 이 글이 들어있는 책 『추억으로 가는 간이역』은 그 해 철도공사가 뽑은 우수도서로 선정되어 이철 사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단종 임금의 유배지에서
산문 - 배홍배
영월역에서 내려 청령포를 향한다.
청령포는 조선의 6대 임금인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한 뒤 유폐된 곳이다. 유폐소로 건너가는 나루터에 도착했을 땐 하늘이 파랗게 갰다.
배 위에서 둘러보는 풍광은 절경이다.
노산군이 한양에 두고 온 사랑하는 왕비가 그리워 밤새 서성이다 잠이 들었을 때 그의 어설픈 꿈속에서도 잠 못 이루고 서성였는지 이곳의 병풍 같은 산세와 물빛은 몽유도원의 그것을 닮았다.
세조가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기 전 이처럼 풍경이 뛰어난 곳에 유폐시킨 까닭은 무엇일까?
임금이 아닌 삼촌으로서 어린 조카에게 내린 마지막 은전인가? 아니다.
이곳은 하늘과 물, 산이 가득 들어차서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 따윈 곁들일 틈이 없다.
이 안에서는 잠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아이 낳는 자연적인 욕망만이 허용된다.
여기선 어린 조카의 연약한 뼈의 속이 복수가 아닌 단단한 무욕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교활한 세조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단종의 어소를 향해 읍소하듯 누운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영화 ‘단종애사’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단종의 비 정순 왕후 송씨가 어린 낭군이 그리워 천리 길을 걸어 영월로 가던 중 사약을 가지고 내려가는 금부도사의 행렬을 보고 마지막 가는 임을 보기 위해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애처롭게 발걸음을 재촉하던 모습과 겹쳐 티베트 승려의 오체투지가 연상된다.
더욱이 이상한 것은 단종의 거소 주변에 오래된 적송들이 서 있는데, 초옥을 향해 굽은 것들과 반대 방향으로 기우러진 것들로 대별된다는 것이다.
반듯하게 서있는 소나무는 눈에 띄지 않는다.
여기선 소나무도 절개파와 시류파로 나뉘어 몸빛이 피의 색이 되도록 서로 증오하며 척을 둔단 말인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삶의 암호인 식물의 향일성(向日性)마저 두 개의 태양 사이에서 고심하기를 강요하는 이곳의 태양은 얼마나 야만적인가!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인지 그 끝을 알 수 없다. 욕망은 통상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한계점 보다 언제나 한 걸음 먼 곳에 베일로 싸여있는 마술 상자와 같아서 그 마지막 한계지점부터 욕망에 이르는 불완전한 다리를 건너 마침내 그 속을 들여다보고 말았을 때 그만 공허에 갇히고 만다.
우리 인간은 이 공허로부터 탈출하는 비밀의 문을 발견하기 위해 이성에 의탁한다.
그러나 이성이라는 것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결별시키는 완고한 성벽이다.
이성의 힘이 종교적 신념과 결합할 때 그 힘은 막강한 것이어서 인간은 스스로를 초자연적인 견고한 독방에 가둔다. 이처럼 수양대군에게 있어 욕망은 종교적인 신념과도 같았다.
어린 조카의 죽음을 지켜보는 그에게 있어 완성될 수 없는 욕망을 강요하는 형벌이었는지도 모른다.
수양대군은 초자연적인 견고한 독방에 갇혀 자신의 손에 죽임을 당한 영혼들의 감옥 같은 평정을 두려워하며 전국의 사찰을 헤맸던 것이다.
본래의 여행 계획은 청령포를 돌아본 후 단종이 사약을 받았던 관풍헌과 그가 잠들어있는 장릉으로 갈 참이었으나 왠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단종의 죽음이 이곳의 산과 강과 하늘과 일체가 되어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무덤은 한 생애의 종착지점이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닌 시작의 의미를 갖는다. 단종이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았을 때 그의 실체는 이미 청령포의 풍경 속으로 사라지고 빈껍데기만 남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곳의 풍경은 인격을 갖춘 인식의 대상이다.
여기의 꽃잎들이 어린 생명이 쓰러지듯 쉬 떨어지고 낙엽이 골육상잔의 역사를 이어가듯 해마다 핏빛으로 물드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노산군이 기대어 시름을 달랬다는 관음송 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그의 비탄의 노래로 들리기 시작하자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북서쪽 벼랑 위에 서 있는 노산대와 망향탑을 향한다.
노산대로 가는 길목에 조그만 비석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영조 2년(1726)에 세운 금표비다.
‘동서남북 사방 각각 사백 구십 척 이내 일반 백성 접근 금지’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단종이 죽은 지 2백년 후에 세운 것이지만 그 당시 단종 자신에게도 이 같은 금족령이 내려졌으리라.
유폐는 강요된 외로움이다. 청령포에 유폐된 단종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과의 접촉이 차단된다.
강요된 외로움은 본질적으로 고독과는 다르다.
고독은 타인이나 대상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상반성을 갖는다.
주위에 아무리 사람이 많더라도 그들과 상호 이해의 관계를 갖지 못할 때 생기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고독은 다분히 자의적이며 낭만적이다. 고독을 느낀다는 것은 실제로 전혀 고독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때라도 자신의 의지에 의해 고독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요된 외로움은 자신의 상대적인 존재인 타인을 잃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영구적인 고립일 때, 다만 말없는 풍경에 둘러싸일 때 사람들은 주위의 대상들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거나 침묵하는 돌이 되어간다.
노산군은 하루에도 몇 번씩 서쪽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올라 한양의 하늘을 바라보다 돌들을 주워와 탑을 쌓으며 외로움을 달랬는데 이 폐군(廢君)은 세속적인 감정과 삶과 죽음의 의미를 초월하여 하나의 돌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강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득한 그리움의 절망만이 유유히 흐르는데 어린 노산군이 선택 할 수 있었던 것은 주위의 대상들과 새로운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의 대상이 되어 이곳의 풍경과 일체가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어느덧 해가 많이 기울었다.
다시 단종의 어소로 내려와 방안에 단정하게 앉아있는 비련의 임금님께 작별 인사를 올린다. 귀양처의 움막은 그 곳에 유폐된 사람을 더욱 강인한 개인으로 만드는가.
지상의 가장 높은 위엄이 아닌 비참한 밑바닥의 울분이 아닌 감옥처럼 견고한 평정을 대면한 채 말없이 정좌하고 있는 노산군. 그러나 그의 창백한 뺨과 가냘픈 어깨를 따라 흘러내리는 17세 소년의 비애를 느끼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그래, 꽃 지고 잎마저 져버린 계절, 구름과 바람만이 처연한 발자국을 찍고 가는 이 척박한 시간 속에 얼치기 시인의 감상 어린 관념이 만발하기 전에 떠나야 한다.
구슬픈 기적소리를 울리며 철교를 건너가는 열차여, 주어진 운명의 길을 앞으로만 나아가도록 선고받은 무의식의 일생이여 또 다시 원시의 고독을 헤매는 이 여행객의 어지러운 발자국은 너 어찌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