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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클래식음악을 들어왔고,

해설서들도 썼지만 바그너는 평소

좋아하지 않아서 바그너에 대한 글은

쓴 적이 별로 없다.

그러나 우연히 트리스탄과 이졸대의 3

프렐류드를 듣는 순간 그 음색과 호흡 너머

어느 지점에서 문득 시벨리우스가 떠올랐다.

 

 

잉글리시 호른의 말하듯 끊기는 프레이징과

화성의 더딘 진행에서 오는 저항감은

내가 의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어느 지점에 머문 상태를 발견한 것이다.

북유럽의 무성한 침엽수림으로 둘러싸인

시벨리우스의 집의 문을 열고 바그너가

조용히 방 안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보았다.

 

 

잉글리시 호른의 애절한 음색과 화성의 흐름,

호흡이 긴 프레이징으로 두 곡은 같은 공간의

공기를 공유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1883년 바그너 사망당시 18세의 시벨리우스는

바그너와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으나 바그너의

열렬한 추종자로 1894년 바이로트 축제에서

연주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르지팔을

관람한 후 1895년 투오넬라의 백조를 완성한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택한 잉글리시 호른은

바그너에겐 죽음 직전의 의식의 흐름,

시벨리우스에겐 저승으로 가는 목소리로

둘 다 인간의 슬픔을 표현한다.

화성법에 있어 바그너는 기능화성에서 벗어나

서스펜션을 길게 가져감으로써 종지의 지속적인

지연을 시도하고, 시벨리우스는 반음계적이고

정적이어서 진행보다는 부유하며 정지된 느낌이다.

 

 

악보를 쉽게 복사하고 곡을 저장하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본다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겠지만

당시 시벨리우스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3막의 서곡에서 받은 영감을 

자신의 집, 서늘한 핀란드의 숲 속 공기에 풀어

애절한 펜 끝으로 트리스탄의 내면의 독백을

북유럽의 자연 풍경으로 그리며, 나직이

바그너에게서 벗어나야 한다고 소리쳤을 것이다.

.

* 두 곡의 길이가 거의 같음.

* 시벨리우스는 자신은 바그너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그에게서 벗어나야만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 투오넬라의 백조는 트리스탄이 시벨리우스의 내면을

통과한 작품으로 가장 바그너적인 작품 중 하나다.

 

 

  • ?
    섬집ㅇㅇ 2026.02.02 09:33
    귀한 음악과 음악에 대한 해설, 감사합니다.
    종합 예술가, 실용의 보배이신 배작가님의
    늘 강건 평안하심을 기원합니다.
  • profile
    nami 2026.02.02 10:34
    저는 LP음반 랙에 음반을 무작위로 꼽아놓습니다.
    그래서 듣고 싶은 음악을 찾아 듣지 못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뽑아 듣습니다.
    음반을 작곡가별, 장르별로 정리하지 않는 이유는
    음악 감상의 편식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어제 오후 이 곡도 우연히 뽑아 듣게 된 것입니다.
    음반을 찾기 쉽게 정리해 두었더라면
    바그너 음악은 일부러 뽑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겉으로만 화려한 것 같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예전에 올린 적이 있는데
    어제 이 부분을 들으며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
    시벨리우스를 좋아하는 터라 써 본것입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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