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부터 생각+추진 하던
커피관련 책을 집필.... 까지는 아니고 예전에 써둔 것들 싸잡아 모아
가리고 추려서 책을 하나 낼까하여
여기 사랑방에 묵혀둔 제 글도 옮기는 작업 중인데 (정말 구차녀~)
요즘처럼 더운계절
시원한 냉장고를 소재로 한 글이 있는데
옮겨 갈 만한 가치는 없는듯 하여
여기다 다시 뿌려봅니다 재 뿌리듯~ ^^
거의 15년 전 이야기니 못 본 분들이 태반일테고
설사 읽은적이 있다해도 기억하지 못할터
그냥 새글이라 생각하시고~
그런데
섬집님께서 하루 2개라 하셨으니
옛날꺼 갖다 붙여놔도 1개로 치실랑가?
암튼 붙여넣기.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운신 어려운 할배가 몇 자 글로써 사랑방에 고하노니
사는 재미 가운데 둘째 가라면 설운 것이 식탐이요,
각별한 음식이나 여염에 귀한 별미 맛보기가 즐거움 중 으뜸이라
그러한 것들 며칠씩 두기에
긴하고 중한 것이 너 氷庫로다.
허나 잊고 지내는 것은
어느듯 여염의 주방마다 흔한 것이 되어
멀쩡한 넘 버릴려도 웃돈 얹는 시절이 왔노미라.
會者定離라 하여!
세상에 만남이 헤어짐과 따로있지 아니하니
氷庫 또한 연한이 차고 壽를 다하면 떠나보낼 物像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情懷가 남과 다름이로라.
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그대가 온 지 우금 십수년, 강산이 한번 바뀌고도 여분이 한참이니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픔을 진정하여 너의 行狀과 나의 懷抱를 총총히 적어 永訣하노니
그대를 처음 만난 때가 언제이던고.
가내가 두로 번창일로 일 적 호기롭게 안식구 앞세우고
達句伐 소문난 百貨物産 가전코너
전대차고 뒷짐지고 허리 제치고 연신 헛기침 바틋하며
호기롭게 들어서서 이리오너라~~
삼단같은 머리채 불끈 묶고 앵두입술 야무지게 옥다물고 부복한
어엿브고 나긋나긋한 낭자에게 일갈하기를
-여그서 제~~~~~~~~~~~~~ㄹ 크고 존넘으로 대령하거라
낙점 받은 氷庫들 중 너를 특히 어여삐 녀김은
반짝이는 銀白 조명을 따라 아우라가 특출하고
나노 무슨 탈취는 필시 신문물의 상징이렷다.
그 緣分이 유독 非常하여
五分亂志 洗濯機 劍俯打 등등을
무수히 바꾸고 부숴뜨렸으되, 오직 너 하나를 年久히 保全하니,
다소 시끄럽고 엎어논 궤짝처럼 거추장한 물건이나
입으로 드는 것들을 온전히 보전하니
어찌 사랑스럽고 迷惑지 아니하리요.
나의 신세 薄命하여 외환위기에 家産이 탕진되고
식솔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건강마저 백척간두.
내 운이 바람 앞에 촙뿔처럼 되었을 적
널로 더불어 시름하여
와인에 마티니에 칵테일에 레몬소주까지
위로와 덕을 본 것이 무릇 幾何로다.
너를 보내야 함은
鬼神의 시기함이요 하늘이 나를 버림이로구나.
아깝다 氷庫여, 어여쁘다 급냉실이여,
야채그릇의 미묘한 품질과 신선실의 특별한 재치를 가졌으니,
物 中의 名物이요, 氣像 또한 우뚝하다.
입을 열면 한 여름에도 궁중에나 맛 보았다는
혀 얼얼한 얼음을 쏟아내고
무언가 쉬임 없이 웅얼거림은 화를 속으로 속으로 삭이는 鎭重함이며
허옇게 내리는 서리는 만고의 충절을 보는듯 하였구나.
고기와 생선을 얼리고 야채를 보관해도 오래 상치 아니함이여
독야청청한 선비의 결기이며
문을 열면 알아서 불을 켜고 닫으면 스스로 불을 끄니
너의 神奇는 귀신이 돕는 듯 어찌 人力이 미칠 바리요.
오호통재라,
여인이 아름다우나 못미칠 때가 많고
오할베 수시로 헛물켜고
양치기 껄떡인다하나 畵中之餠이 심중 팔구인데
그대는 내 손길 닿을 때 마다 원하는 대로 채워주었도다.
사랑방이 아늑하고 즐거우나 심통 노인네들 패악질도 만만찮은데
한결같이 시원한 물과 곡차를 건네줌은
여인에게 지나고 사랑방에 넘는구나
열가지 찬을 열흘동안 상치않게 지켜주니
안채의 일거리를 반으로 줄였도다
밥 먹을 적 잠자기 전 널로 더불어 벗이 되어,
와인잔을 기울이며
生에 百年同居하렸더니,
오호애재라, 氷庫여.
장마철 3년 묵힌 원두막처럼
앞뒤 없이 물이 새고
마른 수건을 받치고 구멍마다 그릇을 놓아도
칸마다 한강이요 바닥까지 질퍽하니
안채의 성화를 감당하기 어려웨라
조석으로 물그릇 비우고 걸레를 짜보아도 속절없고 하릴없다.
오할베의 神術로도, 長生不死 못 하였네.
아깝다 氷庫여,
어느날 눈을 뜨니
네 놓였던 자리에 빨간 문 둘셋 달린 빙고 하나 놓였구나
버리지 아니하면 얻을 수 없음이여
나 또한 쓸모 없어지면 너의 뒤를 따르겠거니.
조침문을 능가하는 현대판 조빙고문입니다.
근데 왜 제가 이 글을 알현하지 못했을까요..
오호 통재라, 이는 필시 내 안력이 부족하여
눈앞을 가린 유리알 때문이리라..
(이런 핑계로 어물쩍 넘어갑니다)
모쪼록 발간한 멋진 책, 사람마다 고루 읽어
재미나게 먹고 마시며 사는 일에
크게 일조하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