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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2 05:48

잃어버린 풍경

조회 수 510 추천 수 0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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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여름방학이다.

지난 몇 달간 사람들과 부딪히며

공허함에 빚진 시간을

세상의 외진 곳의 시간을 빌어다 갚고,

그래도 조금 남으면 서쪽으로 난,

우리 집의 유일한 문인 됫박만한

침실의 창문에 메어두고,

한밤중에 공연히 가슴이 콩닥거릴 때

달아나는 잠을 좇아간 시간의

대용으로도 쓰면 좋겠다 싶어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조그만 역을

찾아 나선다.

 

하늘이 잔뜩 찌푸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다.

청량리역에서 춘천행 열차를 탄다.

비가 오기 전에 상천역에 도착해야 한다.

상천역은 일제 강점기인 1939

간이역으로 태어나서 1967년에

보통역으로 승격되었으나

이용객이 줄어 1996년부터 여객을

취급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2년부터 등산객과

M.T를 오는 대학생들이 늘어나며

다시 여객을 취급한다.

 

옛날 가평에 근무할 때 열차를 타고

지나가면 역보다 큰 역명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아무것도아무런 사람도

보이지 않다가 열차가 구슬프게

기적을 울리며 모퉁이를 돌아가면

한 쪽이 허물어진 역사(驛舍)

슬래이브 지붕이 오랫동안 차창에 떠

있었는데지금도 나는 상천역을

그 커다란 역명판과

귀퉁이가 허물어진 지붕으로 기억한다.

[꾸미기]상천1.JPG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가는 길은

이런 것인가.

하늘이 한 줄기 억센 빗줄기를 뿌린 후

온통 회색빛으로 덮힌 길은

완행열차의 바퀴 아래서 덜커덩거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희멀건 북한강도

내 아련한 기억을 따라 흐른다.

머릿속은 물풀이 자라 흐느적거리고

안개 자욱한 마음속 강물 위엔

물새들이 난다.

문득 물새 한 마리가 외로운 울음을

떨어뜨리고 열차도 빈 하늘에 목 쉰

기적소리를 울리며 긴 몸통을 흔든다.

 

사방에 보이는 것들은 내 기억이 극복할

대상은 아니다.

하나의 풍경을 없애면 또 다른 풍경이

밀려오고다시 밀려오는 풍경의 속도는

열차의 속도를 압도한다.

몸이 어떻게 흔들려야

풍경 뒤로 빠르게 흩어지는 추억들은

설레며 다시 길 안으로 모여드는 것인지,

나는 돌멩이처럼 깊은 생각에 잠긴다.

 

움직이는 것들이 하나씩 제 자취를

지워나가고 차창을 때리는 빗방울들도

제 흔적을 재빨리 지운다.

온 몸이 외로움인 물새와 가슴을 바꾸고,

길을 바꾸고 허공으로 울며 날아오른들

나의 길을 지울 수 있을까만,

커다란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

나는 희미한 자취를 길 위에 남길 뿐이다.

 

-글 사진 배홍배 <풍경과 간이역>에서

 

[꾸미기]상천3.JPG

 

 



  • ?
    달디단수수깡이 2022.07.02 06:37
    1등찍고ᆢ
    사색에 젖게 해주는 여행기 감사합니다
    경춘선 열차와 주변 역들에 대한 추억은
    서울에서 젊음을 보낸사람들에겐 깊은
    낭만으로 남아있지요
    통기타를 들고 경춘선을 타고 청평역이나 가평역쯤 내려서 붉은 촛불이 너울거리는 어두운 까페에 들어가
    눈물보다 진한 막걸리를 마십니다
  • profile
    nami 2022.07.02 06:57
    네 ~ 경춘선과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청춘 시절과는 뗄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달디단수수깡님.^^
  • profile
    사슴아저씨 2022.07.03 01:36
    간이역에만 정차하는 완행열차와, 하루 밤 묵을 수 있는 , 작은 숙소들이 주변에 있다면, 여행하시는 분들이 좋아 하시겠지요.
    상천 간이 역의 이름도 처음 들어봅니다.
  • profile
    nami 2022.07.03 03:31
    네 ~ 그렇습니다.
    상천역은 경춘선 청평역과 가평역 사이에 있는 조그만 가인역으로 주로 등산객이나 산나물 채취객들이 이용했던 역입니다. 감사합니다 사슴아저씨님.^^
  • profile
    知音知己 2022.07.05 05:55
    간이역이 주는 애틋한 풍경에~~ 시처럼 아름다운 댓글에 고무되어 문득 한돌의 완행열차가 듣고싶네요~~~
    가사가 너무 이쁘네요 ~~

    ################

    완행열차 (한돌)

    특급열차 타고 싶지만 왠지 쑥스러워서

    완행열차 타고서 간다, 그리운 고향집으로

    차가운 바람맞으니 두 눈이 뜨거워지네

    고향으로 가는 이 마음 이 기차는 알고 있겠지

    말못할 설움과 말못할 눈물은

    차창밖에 버리고 가자
  • profile
    nami 2022.07.06 05:10
    네~지음지기님 좋은 노랫말과 함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
    섬집ㅇㅇ 2022.07.05 17:52
    배선배님의 서정성 짙은 여행기가 산문시로 다가옵니다.
    자주 들리셔서 마음을 정화시키는 글 올려주십시오.
    시비 사진도 보고 싶네요.


    1999 나라꽃 열차에서 / 섬집아이



    1
    한 주일 객지생활 먼지를 털어 낸 뒤
    나라꽃 일반객실 좌석 깊이 몸을 묻고
    내릴 곳 서울 종착역, 편한 잠을 청한다.

    2
    산허리 걸린 구름
    안개비로 다가와서
    차창밖에 아른아른
    추억을 그리는데
    따끈한
    도시락 김밥
    현실 삶을 깨운다.

    3
    의자를 돌려놓고 마주앉은 일가족의
    도란도란 삶의 얘기 줄 구슬로 이어지듯
    모두가 한 식구처럼 저리 살순 없을까.

    4
    소유와 무소유의
    차이를 막론하고
    적어도
    여기서는 우리 모두 일반승객
    좌석 표 있냐 없냐에
    앉아가고
    서서갈 뿐.
    (1999. 7. 2. 부산출장 마치고)


    오래 전에 시조 흉내 내어 끄적인 걸 찾아 기찻길에 던집니다. ㅎ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건 아닙니다만.. ㅎ
  • profile
    nami 2022.07.06 05:11
    멋진 글 감사합니다 섬집님.^^
  • profile
    소리사랑 2022.07.06 02:52
    구치소에서 3년간 복역?을 마치던 날,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중앙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예비군 마크 달린 색 바랜 군복, 날 선 세줄 다리미 자국

    뿌옇게 흐린 눈에 초록의 들판이 시원하게 날아 들고
    아뿔싸... 하차점을 지나친 기차는 그렇게 양평역을 지나고 있었다.
    "군인 아저씨? 총각?.... 많이 그리웠나보네..."

    어디부터인가 중년의 여인이 옆자리에 앉았고,
    끊임없이 부여 안았던 기억에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표현 못할 그리움이 온 몸을 휘감으며 스미고 있었다.

    귀향, 그리고 첫 인연은 취중의 포옹이었다.
  • profile
    nami 2022.07.06 05:14
    소리사랑님 멋진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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