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왔다.
간간히 내리는 게 너무 과격하지 않아 좋기도 하다.
메마른 땅을 촉촉하게 적시는 상황이 너무 좋다.
모든 세상일이 이렇게 적당히 진행되고 적당히 성과를 내주면 얼마나 편안한 세상이 될까...
문득 책을 읽다가 느끼는 바가 있어 몇 자 옮겨 본다.
병원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많은 일들을 겪게 된다.
아주 오래 전 소아암 병동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그날은 백혈병을 앓고 있는 소녀가 골수 검사를 하는 날이었다.
잔뜩 겁먹은 모습으로 새우처럼 등을 하여 척추 뼈 사이에 긴 바늘을 꽂아 골수 혈액을 뽑는 검사를 하였다.
아픔과 두려움을 참으며 검사에 임해준 아이가 참 대견스럽고 안쓰럽기까지 했다.
창백한 아이의 온몸은 경직된 듯 무서움과 아픔을 참으면서 끊어질듯 한 가는 목소리로 나에게 하던 말을 기억한다.
“아휴, 우리 공주님 오늘은 울지도 않고 너무 이쁘네...”하며
누워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지요.
그때 아이가 한 말은,
“선생님 제가 아파하고 울면요, 우리 엄마도 따라 울어요. 엄마가 나 때문에 우는 것 미안해요.”
‘아이는 아파하면서도 자기 때문에 슬퍼하는 엄마가 너무 불쌍하다’고 엄마를 위로하는 아이를 보며 함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은 가진 자들의 베풂도 아니고, 건강한 사람이 아픈 이에게 주는 도움도 아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해주고 맞추려 하는 나의 희생입니다.
아프리카 빈투족의 말 중에 ‘우분트’를 들어 보신 적 있나요?
“내가 너를 위하면 너는 나 때문에 행복하고, 행복해 하는 너를 보면 난 두 배나 행복해질 수 있다.”
즉 우리 모두는 내가 아닌 너로 인해 행복하다는 의미이다.
‘우분트’라는 말은 어느 인류학자의 실험으로 유명해졌다.
나뭇가지에 사탕과 과자를 한 바구니 달아 놓고 가장 먼저 달려간 아이에게 상으로 준다고 했다.
출발 신호를 했을 때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됐다.
아이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의 손을 잡으며 함께 달리기 시작했고.
바구니에 다다르자 모두 둘러앉아 즐겁게 나누어 먹기 시작했다.
인류학자는 “먼저 도착한 아이에게 주려했는데 왜 모두 함께 뛰었니?”하고 묻자
아이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합창을 했다.
‘우분트’라고.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혼자 먼저 닿으면 나머지 아이들이 모두 슬플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나만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요?”
인류학자는 그 아이들에게서 삶의 철학을 배웠으며 이렇게 널리 알리게 되었다고...
함께 있는 우리 속에 내가 있고, 그래서 모두 함께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진다는 생각은 자기주의적인 현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메시지기도 하다.
이런 날엔 고저 춤추자 놀애가 최고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