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주 세종대왕릉

왕의 숲길

여주의 무릉도원 최교수님댁

天上 驪州, 王의 숲길
음악을 한다는 것은
연주할 줄 아는 것이 아니라
들을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
- 클라우디오 아바도 -
지난 연휴에는 느낌이 좋은 고장 여주를 다녀왔습니다.
여주이천하면 항상 맛있는 쌀 아끼바레?가 연상되고
여주는 2013년 가장 최근에 시로 승격된 도시여서 어딜 가나 싱그러운 자연의 냄새가 물씬합니다.
서울시 면적: 605.21㎢,
여주시 면적: 608.38㎢
오! 여주시면적이 더 큰데 상주인구는 11만입니다. 서울시 인구는 유동인구까지? 1300만이 넘습니다.
놀랍지요? 따져보니 우와~118배의 인구입니다.
그럼 굴러다니는 자동차대수는? 이것도 100배는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서울이 최고 최상의 거주지일까요? 생각이 있으신분들은 빨리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결론은 말할것도 없이 여주시가 그만큼 쾌적하고 심신의 여유가 느껴지는 고장이지요.
더욱 특별한 감회는 제가 어릴때 방학때마다
이천 장호원에 있는 고모네를 찾아가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 기억들이 있기에 특별하지요.
고모네는 25000평의 광활한 농장이었는데 사실 농장주는 서울 송파에 있는 부호였고 고모부는 매니저였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가이스까 향나무, 회양목등 비싸고 품위있는 정원수가 대부분이어서 농장은 내 차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마음껏 농원을 누비고다니며
자연을 벗하고 사촌들과도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지요.
고모부는 자상하셔서 나무이름들을 죄다 알켜주시고 또 당시 전축을 구비하셔서 나름 멋진 음악생활을 구가하셨는데
패티김 하춘화 이미자등 트로트판들이 기억납니다. 사실 그 동네가 이미자친정이었습니다. ㅋ
오전에 들러볼만한 데가 없을까 찾으니 세종대왕릉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27명의 임금중 아니 우리나라 통털어서 최고의 임금
나아가 세계최고군주 컨테스트가 있다면 단연 일등감 아닙니까.
세종은 조선 제 4대임금으로 1418~1450 32년간 재임하면서 아시다시피 어질고 현명한 통치를 한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세계사에 빛나는 위대한 한글을 창제하셨습니다.
타계하신후 처음엔 다른곳에 묻히셨다가 1469년 이곳에 이장하였다는군요.
세종이 승하하기 4년전 타계한 소헌왕후를 그리워하며 합장해달라하여 조선왕릉 최초의 합장릉입니다.
태종 이방원 사극탓인지 연휴에 방문객도 많았습니다.
특이한 점은 머지않은곳에 효종(1619 ~1659)의 묘가 있어 후대왕들은 세종대왕릉을 참배한후
어쩔수없이? 효종의 무덤까지 걸어가야만 했는데 이곳이 이름하여 왕의 숲길
참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산책로입니다.
뻐꾸기 노랫소리 들으며 멋진 숲속비경을 감상하며 왕과 왕비가 된듯 걸어봅니다.
1975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세종대왕릉을 넓히고 특히 성역화했는데 세종대왕동상도 1977년 완성되었다고 적혀있네요.
특히 공들여 멋진 소나무들을 심었는데 아산 현충사와 이곳에만 이토록 멋진 소나무들로 채웠다고 하는군요.
아닌데 융건릉에도 있는데....$%^&
그리고 금강산도 식후경!
어흠~~여주에 왔으니만큼 기름이 잘잘 흐르는 나랏님쌀밥정식으로 우리의 영원한 음악친구
정원섭교수님과 즐거운 환담을 나누며 코로나로 6개월만에 만난거네여. 맛있게 밥을 먹었지요.
사실은 제가 초청드린겁니다. 이유는 나중에~~~
친구가 산북면에 브런치카페를 열었기에 가서 반가운 얼굴도 만나고
친구의 앞날을 축복해주었지요.
카페는 산넘고 물건너 쎄쎄쎄~~~ 아주 산골 같은 분위기에 아담한 2층카페인데 서울이 가깝고 주위에 골프장들이 있어
차량통행량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 친구로 말하면 같이 시를 짓고 즐겁게 시낭송을 했던 친구인데 (아 옛날이여~~~) 제 목소리도 만만치않은
성우목소리인데 이 친구 목소리에 눌립니다 그려. ㅋ 우리의 활동무대는 안양평촌.
20년을 수원에서 살던 친구인데 작년 여주로 이사를 갔지뭡니까.
단독주택인데 대지면적이 500평이 넘는다고 잔디돌보기 힘들다고 가끔 엄살인데 꿀밤을 놓아주고 싶어요. ㅎ
남편의 사업지가 경기도 광주여서 그리로 이사했다고 합니다.
당연 저는 섭섭했지요. 아뭏든 친구가 차린 카페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이윽고 마지막 행선지는 어딜까요?
숲속 한 가운데 에리어 2000평에 그림같은 집 6가구가 있었더니. . .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어쩌다보니 집을 짓고 그곳만의 경치, 분위기에 반해 무엇에 홀린듯이 20년을 살았노라는
정교수님 말씀에 한번 구경시켜달라고 제가 청한 것이지요.
사모님은 서울소재 고교교사로 재직하며 편도 60키로(왕복 120키로)를 매일 출퇴근, 교수님은 20년 가까이를 100키로 가까운 곳을
한결같이 주말부부, 헉!! 이분들 강철부부 아닙니까? ㅋ 그래도 그렇게 사는것이 마냥 즐거우셨답니다.
집은 영혼을 담는 그릇 !
삶을 닮는 공간을 깨닫고 직접 소유하지 않고서도
자연의 무한한 공간을 빌려와 ( 借景 )
풍족히 누릴줄 아는 마음의 여유,
멋이야말로 선비의 안분지족이렸다! 여기가 어느 문중의 넓은 선산 한가운데 부분이랍니다.
무릉도원같은 동네모습은 행여 프라이버시때문에 올리지 못함을 양해바랍니다.
교수님 사시던 집은 겉모습만 보고 친하게 지내신 옆집 최교수님이 반갑게 맞아주시더라구요.
이분도 대구근처 학교가 근무지였는데 오랜시간을 주말부부로 이곳에서 지금까지 지내셨다니
참 무지막지한 열정의 소유자들이십니다.
대부분 20년 된 목조주택들이라 낡은 품이 역력하지만 천하의 비경과 고요, 청정한 공기는
신비감이 느껴질만큼 운치가 있습니다.
마침 이분이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분이셔서 즐겁게 이것저것 오디오도 구경하고 또 음악도 여러곡 들려주십니다.
2층까지 거실, 방마다 그것으로도 족할만큼 셋팅이 되어있어서 (전체 5조 )과히 오디오부잣집이라고 느껴집니다.
그윽한 카모마일 차도 대접받아 음미하며 마셨지요. 이분도 전기과 최교수님이라 자신이 만든 진공관, 스피커등 보여주시는데
햐 ~~~
음악에 대하여 축적된 진지한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말린 돗자리같이생긴 스피커가 참 재밌네요~~
(에고 무식. 이게 스피커가 아니라 흡음재라는군요. ㅎ)
음악베짱이 로체와 래리님은 이날 청주에서 오신 정교수님과 여주에서 즐거운 오디오산책에
품위있는 왕의 숲길 산책과 더불어
새로운 시작을 한 친구의 인생길도 지켜봐주며 즐거운 나들이를 했습니다.
내일이 벌써 주말이네요.
요즘 일주일이 무척 빨리 다가옵니다.
장마가 오기전에 이번주말도 가까운 곳으로 산뜻한 나들이계획 세워보세요~~ ^^
본문 읽기 전,
본문 아랫 사진부터 보는 데...
아니? 벌써...???
그간 기기를 많이 모으셨구나... 혔는디... ㅋㅋㅋ
본문을 읽다 보니... 뭡니까?
그니까네... 정교수님 옆집 사시는 분의 오디오라고라... ㅋㅋㅋ
놀랐잖유!!!
그란디 사장님 얼굴을 정면으로 뵈니 누구더라?
예전 탈렌트 누구 닮은 거 같은디...
지가 들아마는 잘 안 봐서...
혹시 그런 비슷한 야그는 안 들으셨나요?
그렇다고 최불암이나 로져 무어 닮았다는 게 아니고라... ㅋㅋㅋ
저는 우짜다 컴컴한, 사람 식별이 잘 안 되는 곳엘 드가면 드롱아랑 닮았단 소릴 자주는 아니래두 가끔 듣는 형편이라... ㅋㅋㅋ
저런 도심 외곽에 위치한 한적한 곳엘 가면 항시 느끼는 건데...
도심은 계획이랍시고 막우막우 구획해 임대용 궤짝형 건물만 잔뜩 채워 볼품없고,
도심에서 쪼매만 벗어나면 이건 뭐 듬성 듬성 나무만 심어놨지 전혀 관리고 뭐고...
권력자들이 제 잇속에 눈들이 멀어 나라 체면이고 뭐고 전혀 꾸미지 않아 이게 나란지 뭔지...
왕실 얘기하셔서 문득 생각나는 일이,
엊그제 조선 황실의 마지막 황손인 이석씨의 본인에 관한 파란만장했던 지난날의 고백을 들었는데요...
전통이 10. 26 거사 후 크게 잘못한 일들 중 남은 조선 황족들을 궁에서 막우 쫓아내다시피 내쳤던 사실이 있었더군요...
도피하다시피 미국으로 쫓겨 건너가 서부 쪽에서 청소부, 슈퍼 종업원, 주유소 주유원 등을 하며 연명했다는 말에...
우리가 국사를 배우면 뭘 하며 쇠괴사를 달달 외며 배운들 뭘 한 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