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의 우크라.. 부분은 이해하겠지만
뜬금없이 한중전쟁??? 머선소리고???
하실분 계실지 모르겠는데
엊그제 바이든이 다녀간 후부터 우리와 중국간에 분위기가 별로인듯~
사드문제로 된통 뒤틀어져 있다가 조금 풀릴만하니 코로나
코로나가 끝나가는가 했더니 IPEF ...
윤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바이든이 득달같이 달려오고
국제문제란 것이 우리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긴한데
얻는것 보다 잃는게 클듯하여 영 찜찜합니다.
세상일이란게 되도록하긴 어렵지만 못되도록 훼방놀긴 쉬운 법이라
미국이 도와주는것은 눈에 잘 안 보일테고
중국의 심통은 .....불을보듯...
그렇다면 에레기 중국과 한판 ..??
그런 상상 끝에
오늘얘긴 중국과 한판 붙었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중국과 붙은 적이 몇번 있습니다.
아실테지만 수당과 고구려 전쟁은 저넘들의 일방적인 침략전쟁입니다
우린 죽자고 수비만하여 물리친 전쟁.
안시성을 보시면 됨~
오늘 이야긴 나당전쟁.
이 전쟁은 시작을 거의 우리가 합니다
(편의상 삼국을 뭉뚱그려 중국에 대비한 우리나라라고 표현 하겠습니다)
먼저 신라가 당 고종을 찾아갑니다
김인문인가 문무왕 동생
고종의 마음에 들었든지 나중에 문무왕 내리고 니가 왕노릇 해라~
고종과 약속을~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거시기 하자니 조종이 기분이 째집니다
철천지 원수 눈엣가시같은 고구려를 날려버릴 수있는 절호의 찬스로구나싶어
- 그려 그러자 대동강 이남은 늬덜이 하고 이북은 우리가~
당 고종은 소정방을 지휘관으로 무려 13만을 배에태워 백강으로 아시는얘기라 생략~
이를 호응하여 문무왕 김유신도 5만으로 황산벌, 계백 어쩌고 하여 사비성에 도착.
그날이 660년 7월 12일이등가 그쯤됩니다.
워메~ 암기교육의 특장점~ !! 50년을 뛰어넘는 총기 좀 보소~
사비성을 둘러싼 당나라군대와 신라군...그리고 안타까운 백제....
감정은 배제하고 역사만 보기로합니다
소정방이 갑자기 불같이 화를 냅니다
신라군이 약소한 날짜보다 하루 늦게 도착했다는 얘기
전쟁에서 약속은 매우 중요하기하지만
소정방이 느닷없이 하루늦은 책임을 물어 신라장수 하나를 목을 베겠답니다
소정방은 이미 당나라 최고의 명장으로 토번 돌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적장을 베고 적을 무찌른게 (중국입장에서) 한두번이 아닙니다.
목을 베겠다는 장수가 신라의 김... 문... 뭔데
궁금하시면 검색~~
그때 김유신이 도끼를 들고 소정방 앞에 떡하니 서서
우리장수를 벤다면 내가 먼저 네넘의 목을 베겠다고 호통을~~
그 소리에 놀랐는지 그냥 한번 해본 소리 였는지 소정방은 목베기를 취소합니다.
짐작컨대 소정방은 향후 전체적인 작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으름짱을 놓은게 아닐지~~
김유신도 그런 내심을 짐작하고 결단코 호락호락하게 보이지 않겠다는 표현??
이를 계기로 김유신이 소정방을 벼르게 되었다는 후문도 있고...
두고보자는 넘 무섭지 않다지만 김유신 쯤 되면 무섭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백제가 멸망하고 나당연합군은 다시 고구려로 향합니다 668년입니다.
연대 같은것은 각자 찾아보시고 저는 그냥 일사천리로 고증없이 이야길 풀어갈테니
틀린부분이 있어도 양해 하시길~~ ^^
고구려로 쳐들어간 것은 소정방의 당군 뿐 아니라
거란족과 말갈의 대규모 기병이 포함돤 연합군입니다.
특히 말갈의 이근행은 3만의 기병으로 파죽지세 고구려와 신라를 공격합니다.
이근행의 말갈부족은 과거 고구려로 부터 이탈하여 앙심을 품었던 상태
대부분의 말갈은 고구려와 연합하거나 귀의했었는데 이넘은 벼르고 있었던 셈.
당 고간장군과 함께 쳐들어와 신라군을 박살냅니다
백수성전투? 그 쯤에서 멈추는데
거란이나 말갈족은 싸울땐 잘 싸워도 자기네 나라가 침략을 당하는것은 아니니
이길땐 잘 싸워도 악착같이 하진 않지요 그래서 곧 흥미가 떨어집니다
당나라가 엄청난 금덩이를 안겨주면 좋은데 안그러니까 시들해지지요~
이때쯤 소정방이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집니다
유인궤 설인귀 같은 애들은 살아있는데 소정방은?
중국사에도 소정방은 그냥 죽었다고 적혀있지 병으로 몰 했는지
전장에서 전사했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소정방은 어찌된걸까요?
삼국유사에 기록이 잠시 나오고
우리 향토사에 자세히 나오는데
문경지방에 가면 옛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와 지명이 있습니다
이야긴즉슨
김유신이 소정방과 그 막하를 술자리에 초대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상대로 싸우려던 무렵 667년 입니다.
술이 거나하게 돌았을때 김유신은 그들을 모두 독살합니다
술에 독을 태운것이지요
그리고 소정방의 목을 베어 질질 끌어 다리밑에 던졌다던가???
그런 지명이 문경에 남아있습니다 (정확히는 문경과 상주 사이쯤)
지명이 <당교> 우리말로 <뙤다리>입니다.
우리는 중국인을 옛날부터 뙤넘이라고 불렀습니다
일본인을 왜넘이라고 부른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한중의 역사학계에서 인정한 정사는 아니지만 우리로서는 기분 좋은 야사입니다.
본론
중국은 처음의 약속을 어기고
백제 신라 고구려 삼국을 모조리 복속시켜 속국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드러냅니다.
소정방이 김유신에게 은근히 백제 어느땅을 (기억안남) 주겠다하고
그리고 문무왕을 계림도독부 도독으로 임명하겠다라고합니다
백제도 왕자 융 이던가?? 하여튼 왕자에게 웅진도독을 시킵니다
도독이란 중국황제가 내린 벼슬로 쉽게 말하면 총독 같은 지위?
김유신이 누굽니까 일언지하에 놉~~
신라는 백제 고구려가 없어져버린 한반도에 달랑 남은 나라입니다만
처음부터 당나라의 군사동맹국 입니다
소정방이나 다른 당나라장수에게 동맹국으로 대접하라고 요구합니다
- 대동강 이남은 신라차지라고 약속했다~
- 먼 소리냐? 나넌 그런소릴 들은적이 없다
- 니네 황제가 약조한 것이다
- 문서가 있니?
-...그러니까... 문서는.... (중국황제가 말하는데 문서로 도장찍어 주세요~ 라고할순 없자나)
잘은 몰라도 중국연합군은 대략 20만
엄청난 대군입니다
그래도 신라는 대담하게 당을 향해 선전포고 한판 붙습니다. 대략 670년.
신라가 가끔 이길때도 있지만 주로 깨집니다
그러나 직접 붙으면 깨지지만 작전은 훌륭합니다
백제와 고구려 유민을 끌어들이고 그들의 부흥운동을 지원하고 당나라의 보급을 차단합니다.
그렇게 7년간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합니다
전장은 고구려 지역입니다
당시 고대국가는 봉건제거나 반봉건제 체제입니다
중앙정부가 깨지고 왕이 없어져도 지방의 영주급 호족들이 건재합니다
이들은 수십 수백의 군사를 거느리고 연합하여 당에 대적합니다
신라는 이들을 음양으로 도운 것입니다
첫째 한강 임진강 하구로 들어오는 당의 보급선을 차단합니다
군량을 실은 배들을 아주 박살내는 작전입니다.
당이 적극 공세를 펼치면 신라가 박살나고 당이 소극적으로 움추려들면
신라가 공격을 하든지 재정비의 여유를 가지게 되는 구조.
왜 당은 적극적으로 계속 공세를 유지하지 못했을까요?
그 인구에 그 비옥한 후방을 가지고 있는데 왜?
이는 국제적으로 당시를 훑어봐야합니다.
당시 서역쪽에 토번(맞나?) 이 당을 침공합니다
(토번은 지금의 티벳인데 분리되어 있어 정확히 티벳이라하긴 조금 애매~)
이넘들이 대단히 강성한데 돌궐까지 연합하여 당나라의 주요 무역교통로 실크로드를 장악.
그러면 당은 설인귀 같은 장수를 불러들여 토번을 치게합니다
설인귀는 토번에게 대패하여 부하장수를 모두 전사시키고 거의 혼자 살아 귀국~
당시 역사적으로 천산남로를 점령당하자 천산북로가 뚫리게 됩니다~
그게 모두 나당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지요
토번이 강하게 밀어붙이면 당나라군대가 빠져나가
나당전쟁이 소강상태에 들고
그쪽이 소강상태가 되면 나당전쟁이 불붙고~~
토번과 신라가 서로 짜고친 고스톱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최소한 수뇌부에서는 서로의 그런 국면을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고구려 백재 부흥운동과 특히 일본의 백제 지원 전쟁... 등등
나당전쟁은 당시 범 아시아를 포함하는 국제전 이었다고 봅니다.
당과 거란말갈 연합군은 고구려 고토를 거의 장악하고
한강유역을 점령하려고 남하
지금의 임진강 유역, 정확하게는 한탄강 부근 포천지역의 매소성에 집결합니다
20만 대군입니다
20만 대군이 매소성 이란 작은성에 다 모인것은 아니고
그 일대를 각 군별로 나뉘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이넘들은 한강유역을 차지해야 중국에서 오는 보급물자를 쉽게 수령할 수 있습니다
임진강 한강을 따라 배가 내륙까지 들어올 수 잇으니까
그런데 9월29일입니다
포천의 가을,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 ...
9월 말이 웬 겨울?
하실분이 계실터인데 당시는 음력입니다
음력 9월29일은 양력으로 11월 초순이 될수도 있지요
포천의 11월초 밤바람은 매섭습니다.
제가 문산에 거주해봐서 앱니다.
그리고 보급은 엉망입니다
20만에 7만 이상의 군마를 먹이려면 양곡 마초가 하루 수십톤...
배가 아니면 실어올 길이 없는데 설인귀의 수군이 박살난 상태입니다.
결국 매소성의 20만 당나라연합군은 처참하게 깨지고 죽고 도주하게 됩니다
말갈 거란 같은 용병들은 전황을 파악하고 불리하다 싶으면 무조건 후퇴입니다
목숨을 걸고 싸울 이유가 없지요.
당시 신라의 주요장수는 원술
아시는대로 김유신의 아들입니다.
얼마전 전장에서 살아돌아왔다고 김유신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저넘을 사형시키라고 문무왕에게 말했던 그 아들입니다.
문무왕도 입장이 곤란~~ 즈그 사촌이고 원술이 크게 잘못한것도 아닌 그냥 어쩌다보니
죽지않고 살아온 거 뿐인데...
아무튼 원술은 죽지않고 3만 대군을 끌고 매소성 전투에 참전하여 결정적 승리를 이루는데 일조~
20만대군을 파죽지세로 ~~ 사기가 떨어진 군대는 이미 군대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적을 물리친 후 노획한 말이 3만마리?
당시의 말은 지금으로 치면 전차나 장갑차 같은 존재인데....
나당정쟁은 대충 그렇게 끝이 납니다
즉 한중의 전력을 다한 전쟁.... 적어도 한의 입장에선 전력을 다한 전쟁에서
중을 물리치고 대동강 이남을 독차지하게 됩니다
혹자는 고구려가 통일을 했으면 요동 만주 어쩌고 하시는 분들 계신데
역사에 가정은 없습니다.
신라가 그렇게 되었고
나중에 당이 침체되었을때 발해가 북쪽을 차지하게 됩니다
우리가 당시 세계 최강이던 중국을 물리친 요인 중 중요한 하나는
백제 고구려 유민들의 도움입니다
당으로서는 나름 백제와 고구려를 회유하려 했지만
백제와 고구려인들에게 신라는 그나마 말이 통하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이 어느정도는 작용 했다고 봅니다
더욱이 당의 사비성 공략 후 의자왕을 비롯 만여명을 잡아가고 끔찍한 약탈을 두눈으로 본 것이 결정적입니다.
신라도 당에 선전포고 하기전에
외교적으로 일본과 화친을 맺어둡니다.
신라는 늘 일본과 티격태격 치고받는 사이였지만
대당 선전포고를 앞ㄱ두고 뒤를 튼튼히 해둘 필요가 잇었지요.
일본도
- 그래 우리가 도와줄 힘은 없지만 늬덜이 당과 싸우겠다면 우리가 훼방을 놓을 순 없지.
이런 분위기입니다.
당시 일본 실세는 후지와라(?)가문.... 이는 백제 왕족의 후손.
우리나라와 중국과 미국
그리고 인도가 먼저 나오는 IPEF ...요런 복잡한 국제관계 뉴스를 보다가 떠오른대로...
고증 없이 기억나는대로 대충이라 틀릴수 있으니 혜량 하시길
찾아보니 매소성전투 그림이... 요만한게...

일본사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에도 밝으십니다.
존경!
저는 연도 외우는 게 싫어서 역사에 흥미가 없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대학과 대학원에서 역사 관련 논문을 썼습니다.
도서관에다 역사관련 서적을 쌓아놓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육사도서관에 가서 전쟁사, 무기 발달사도 찾아 읽고..
그후 역사란 게 몇년 몇월 몇일 누가 어디를 지나가다가 오줌을 눴다
는 것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과거를 살펴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다
온고지신이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았지요.
하여 지금은 텔레비전에서 역사관련 프로그램을 즐겨 봅니다.
길우선배님 덕에 그간 몰랐던 것을 새로 배우게 되니 감사합니다.
제주살이는 잘 마치고 오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