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너가 죽어야 내가 산다
혹은 거꾸로
내가 살려면 너가 죽어줘야겠다~
입니다.
마지막 무로마치에 막부를 세운 아시카가쇼군
(이를 무로마치막부 혹은 아시카가막부 라고도 부름)
슈고다이묘를 지방으로 파견했다는 얘길했습니다
이게 아주 중요한데
이들의 힘이 커지면서 전국시대가 시작됩니다
왜 커지느냐?
예를 들어 봅시다
쇼군의 친척이나 형제나 혹은 전공을 크게 세운 장군에게
- 니가가라 강원도 ~~
라고 한다면
그는 강원도 다이묘가 됩니다
우리 조선의 관찰사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는 강원도에서 만큼은 거의 왕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막부에 얼마간의 세금만 내면 나머지는 자기가 알아서 죽을 쑤든 밥을 짓든 맘대로~~
강원도에서 나오는 산물의 세금을 일정량 납부해야하는데
실세니까 혹은 형제 처남 사돈 이복동생 이니까 걍 알아서 내도록 둡니다
실세는 왕노릇하면서 아랫것들에게 인심을 얻어야 충성을 다할테니
그 땅을 나눠 줍니다
-삼돌이는 강릉군수 개똥이는 태백
봉삼이는 속초 ... 이런식이죠
그러면 강원도 다이묘는 아주 빵빵한 가신들을 힘쎈 다이묘가 되어 쇼군에게 충성합니다
그런것들이
갱상도 전라도 충청도 피안도로 .... 보냅니다
당시 일본은 그렇게 보낼수 있는 주가 60개가 넘었답니다.
그렇게 몇대가 지나고 중앙의 쇼군이 영 션찮은 인간이 들어서면
그래서 덴노가 쇼군을 깔보고 쌈박질을 시작합니다.
그러면 강원도 갱상도 다이묘가 가만히 지켜봅니다
- ...덴노편이 센가? 어느쪽으로 붙을 까???
-... 이 기회에 내가 올라가서 싹 정리하고 실권을 잡아뿌까???
이런 야심을 품는게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긴 어렵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그게 사실은 ....
경북 다이묘가 수도권으로 군사를 내면 경남 다이묘가 뒷통수를 ???
그럼 경남 다이묘와 동맹을 맺고 뒤를 든든히 하려면... 글치 동맹은 혼인이지
저넘 큰아들을 내 사위로 삼으면
다음 갱남 다이묘는 내 외손주??? ㅋㅋㅋ
이런 통박을 굴리게 됩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런야망이 구체성으로 나타나게 되는 시간이 옵니다
지옥의 시간이죠~
<오닌의 난>
아시카가 쇼군시대초기는 일본의 전성기 중 하나입니다
사회도 안정되고 문화도 꽃피고 문물도 발달하고 상업이 번창하여
상업자본이 형성되고 고급문화로 茶道 서예가 유행하기 시작하고
서민들의 예술 가면극(노 라고 합니다)
정원 꾸미기도 유행합니다
중국 조선의 명필 글 한점, 찻사발 하나는 요즘 가치로 억대를 홋가 하죠~
전국적으로 도로가 발달하고 도로가 발달하니 덩달아
숙박업 요식점 찻집 과자집 등이 길을 따라 발달~ 온천도 번창~
고속도로가 깔리면서 휴게소가 성업하는 이치와 비스므리~~
금각사도 이때 생깁니다
일본이 세계에 대놓고 자랑하는 호화롭기로 비할바 없는 ... 베르사유궁전의 축소판?
암튼 이넘들은 껍데기를 금박으로~~
나중에 금박입히는게 유행하여
비와호숫가 오다 노부나가의 아즈치성은 호화의 극치를 달립니다
천수각은 엄청난 양의 금박을 입히고 호화의 극을 달렸고
덴노를 데려올 생각으로 교토의 궁궐처럼 꾸미기도 했습니다
도요토미의 오사카성도 황금을 떡칠을 하고
도쿠가와도 아들의 나고야성 용마루를 금기와로...
당시 일본에 그만큼 금의 생산량이 많았다는 방증 이기도 합니다
일본관광의 필수코스들 이죠~~
다시 본론으로,
아시카가 시대 사회가 발달하자
일본과 주변국의 말썽거리인 왜구도 명과 손잡고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왜구는 일본 규슈지방이 주 무대고 기타 해안지역 그리고 말은 왜구지만
명나라 남쪽이나 중국과 일본사이의 섬지방 쓰시마 등지의 건달들이 해적이 됩니다
극소수 이긴 하지만 조선인도 왜구에 가담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짐작에는 왜구에게 끌려간 조선인 중에 왜구를 따라다닌 케이스인지
아니면 언제 어디든 사회의 불만세력이나 건달은 있기마련이니....
왜구도 막아주고 한게 고마웠던 명나라는
아시카가에게 일본왕 이란 직첩을 하사하고 무역을 허락합니다
당시 중국과의 ㅁ무역은 쇼군에겐 황금알~
예를 들어 중국비단을 들여와서 다이묘 부인들에게 팔면 열곱 아니 백곱 남는 장사입니다
다이묘나 사무라이들은 나름 가오가 있어서
돈으로 쩨쩨하진 않습니다 고리채를 내서라도 펑펑 쓰는 습관
술집에 가면 기생들에게 팁을 줄때 돈을 세지않는 것이 미덕입니다
이것은 식민잔재로 현재 우리나라 룸쌀롱문화에도 해당됩니다.
그래서
명기로 소문난 기생은 손님이 세어서 주는 돈은 받지 않는다는 자존심이야기도 ~~
명의 왜왕수여에 감읍한 쇼군은 천자의 신하임을 아뢰는 서신을 보내고 그런 밀월관계...
일본사계에서는 발끈합니다
우리 덴노가 천황인데 천자의 신하라니 뭐냐?? 이런식이죠
천자니 천황이니 우리가 보기엔 웃기는 소리지만 걔덜이 그리 부르는걸 어쩌겠습니까~
몇대 쇼군이 지나자 일본사회는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근본은 농촌의 동요
전쟁이 나면 농촌의 피폐는 당근.
만약 내가 강화도다이묘인데
가까운 김포 다이묘가 강화도를 먹겠다고 쳐들어 오면
나는 강화읍성에 군량을 쌓고 주변의 먹거리를 모조리 불태우고 방비를 하겠죠
들판에 먹거리를 남겨두면 적의 군량이 되니까
이를 청야작전 이라합니다 (清野)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나치 독일군이 러시아를쳐들어 갈때도 러시아는 청야작전을
수나라 당나라 연나라 관구검 요딴것들이 고구려를 쳐들어 오면
고구려도 청야작전을
들판을 불태워 먹을거 없이 깨끗이 한다는 청야작전은 전쟁의 기본입니다.
전쟁은 끝나고
청야작전으로 빈들판에 돌아온 농민들은??\
굶어죽기 십상입니다
전쟁은 군인보다 농민에게 더 큰 피해를 가져온다는...
그래서 농민들이 단체를 만듭니다
촌장을 중심으로 우리의 향약 같은 단체를 만듭니다
사무라이들의 품위유지비와 다이묘 쇼군에게 세금을 바치다 보니
농촌의 경제는 엉망 (조선보다 더 했다는 통계가..)
당시 논농사의 세금표준이 6:4 수준이었다는데 놀랍게도 6은 세금 4는 농민몫
나중에 전란이 일어나면 이것이 7:3 혹은 8:2 까지 올라갑니다
전란이 끝났다고 원래대로 잘 돌아오지도 않고...
나중에 나라가 안정되고 전국시대가 끝나도 5:5 수준이었다 합니다.
언젠가 군산여행때
지주 문재철 소작투쟁 사건을 들은 적이 있는데 (무슨 섬 이었는데 암태도??)
다른 일본인 지주는 50% 소작료
문재철이란 악질은 70%를 받아갔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일본은 오래전 부터 50%의 소작료는 표준이었던듯 합니다.
그에 비해 조선은 일본보다 조금 낫습니다
대략 30~50% 수준입니다
그리고 밭이나 스스로 개간한 땅은 소작료가 없거나 낮습니다.
일본처럼 심하게 거두었다면 민란이 일어났겠지요
조선민중의 근성이 그렇습니다
신안지주 문재철에 대한 소작투쟁은 해를 넘겨가녀 계속되어
결국 농민의 승리 4:6으로 40% 소작료가 타협되고
그 비율은 전국적으로 표준이 됩니다.
어쨋든 전국시대 농민들 살이가 팍팍하다보니
농민출신들은 특히 청년들은 틈만나면 신분상승을 꿈꾸는데
그 꿈은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는 것 뿐입니다
요시노리라는 쇼군은 무리하게 쇼군의 권력을 되찾으려 하다가
대낮에 다이묘에게 암살을 당합니다.
이후로 일본은 툭하면 암살이 일어납니다.
암살의 유행은 메이지유신 이후에도 극성을 부려 숱한 요인들이나 대신들이 암살 당하고
그 유행병은 식민지 조선에도 건너와서
해방후 누구나 다 아는 김구 암살사건
동아일보사장 송진우 (한민당 대표인물) 건준 여운형 (대중적 인기가 대단했던 약간 사회주의...)
장덕수 등이 암살 당하거나... 아~! 갑신정변 주동자 김옥균도 암살 당하네요
홍종우라는 프랑스 유학생이었지아마...
아시카가 가문 8대쇼군 요시마사에겐 아들이 없었습니다 (여기부터가 재미있음~~)
아들이 없으니 어쩔수 없어 동생 요시미를 부릅니다
요시미는 형이 쇼군이 되자 문제가 생길까 하여 승려가 된 인물입니다.
- 아우야 니가 내 후임쇼군을 하거라~
- 행님 싫소 나는 그냥 중노릇하는게 좋지라~
- 내가 아들이 없자나 핏줄이 니뿐인데 우야노 니가 하거라
- 아~ 조또 하기싫은데... 그라모 어떤일이 있어도 물르기는 없기요~ 약속~
- 아랏따 안물르마~~약속~
이렇게 약속을 했다는데 기록은 아니고 야사이니 믿거나말거나~~
동생이 승려생활을 접고 쇼군 후계자수업 시작
요시미의 후견인으로 당대의 지략과 권력을 두루가진 호소카와 관령을 지명.
그런데 .... 이런~!!
쇼군 마눌이 뒤늦게 얼라를 덜컥 낳아부럿넹~
낳고보니 아들이넹~~~
그때부터 마눌의 등쌀이 시작됩니다
대충 짐작 가시죠~~
그 마눌이 도미코 입니다.
도미코 한자를 우리말로 읽으면 富子
우리나라 여배우 강부자가 떠오릅니다
그분이 어릴쩍에는 적어도 학교에서는 도미코라고 불렸을겁니다 모르긴해도.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요
말 하나마나
도미꼬는 아들을 쇼군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겠지요
그런데 이 여인에겐 엄청난 재주(혹은 욕망)가 잇었는데
돈 버는 재주입니다
고리대금업
쇼군남편의 위세를 등에 업고 상인들이나 무사 다이묘를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는데
당시 일본 제일가는 재산가로 등극했다나 어쨋다나 야사입니다~
아무튼 헛소문은 아니고 돈이 많았던건 사실
남편에게 계속 졸라댑니다
동생 말고 아들을 쇼군으로~~쇼군으로 ~
마침내 쇼군은 동생 요시미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 우짜것노 니가 함 양보해라고마~ 내가 죽것다~
- 햄요~ 이랄수 있능긴교? 손가락 걸고 약속했잖응교 아 씨바 나는 몰것심더.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둘 사이의 문제만이 아닌게
도미코는 엄청난 돈을 풀어 아들을 지지하는 다이묘 무사계급을 모으고
당대의 실력자 야마나 모치토요를 자기 아들편에 포섭하고 (시고쿠쪽 지배자)
다른 야망이 있는 다이묘들은 동생편으로 뭉칩니다
진작부터 동생의 후견인으로 지명된 관령 호소카와 가스모토 및 숱한 다이묘들~
이렇게 뭉쳤으니 전쟁은 자연뽕 입네다~~
호소카와는 관령이란 직함을 가졌는데
관령이란
당시 일본 서부지방을 통괄하여 다스리던 직위
예를 굳이 든다면 전라감사나 피양감사 같은 .... 우리와는 워낙 체제가 다르니 쉽게 설명하긴 어려운데
여러 다이묘를 거느린 옥상옥 같은 존재
일본사에는 관령을 서부지역 총독으로 표현합니다.
당시는 혼돈의 시대여서 아래 다이묘들이 인정하지 않는 무능하거나 힘없는 관령은 별볼일 없죠
그러나 호소카와가문은 유능했는지 관령직을 대대로 독차지합니다
나중에 북쪽의 유명한 관령으로 우에스기 겐신이 있습니다 (다음시간에~~)
양쪽 무리들이 서로 원하던 권력다툼이니 양 진영은 엄청난 무력을 동원하여 맞붙습니다.
그때가 1467년 우리나라로 치면 세조임금 끝무렵쯤~
그때 우리나라도 엄청 암살이 있었군요
수양의 자객들이 김종서 황보인을 야밤에 습격하여 칼로 찌르고
한참 전에 이방원도 삼봉을 살해했지요 거의 암살수준으로~
권력에는 죽음이 따르는 법인가 봅니다.
그렇게 전국의 다이묘들이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싸웁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수준??... 까지는 안되지 않을껄~~
당시 기억하기로 동군이 16만 서군이 12만???
대충 그럴겁니다
이 싸움은 무려 11년동안 계속합니다.휴전할 때 까지~ 11년~!!
그런데 쇼군 요시마사는 자신이 원인을 제공한 전쟁 인데도 한가하게 집에서 정원을 가꿉니다
그는 정원 가꾸는 일에 푹빠져서 전쟁도 정사도 일체 돌보지 않습니다
매니아수준을 훨씬 넘어 거의 도박중독 수준입니다.
그는 유명한 금각사를 모방하여 은각사를 만들고 은으로 덮을 생각으로 은각사라 하는데
전쟁이 워낙 치열하여 은 도포계획은 접고 그냥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의 하나로 만듭니다.
이 건물과 정원은 나중에 불교 사원이됩니다
남편이 저 모양이니 자연스럽게 부인 도미코가 실세가 됩니다
부인이 실세가 되어 남편이 정원 다도에 빠졌는지 모르죠...
일본사에 여성실세가 드문데...
아무튼 쇼군이 이 모양이니 다이묘들이 쇼군을 존중하거나 권력을 인정할 리가 없지요
11년간이나 싸우다가 1477년 일단락 되긴 하는데 결과적으로
수도 교토는 잿더미,
쇼군이 쇼군답질 못하니 들어오는 세금이 마르고 국고는 텅 비고
쇼군이나 덴노는 궁핍하기가 형언하기 어렵습니다
각 지방의 다이묘들은 자기지역에서 그냥 왕으로 자릴 잡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이들을 戰國大名 센고쿠다이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부르기 좋게 전국다이묘라고 부릅시다.
온 나라가 전쟁통에 휘말렸다는 얘기
전국시대에 접어든 이때가 대충 1477년 부터 입니다
이제부터
니가 죽어라 내가 살란다~~
완전히 조폭의 시대로 진입하는데
그런데 웃기는 것은
양진영과 상관 없이 중앙정부의 통제를 거의 받지않던 큐슈지방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지고 볶고 서로 땅따먹기 전쟁을 벌리던 전국시대였습니다
전국시대 첫머리를 장식하는 인물로 다케다 신겐이 나옵니다.
이넘은 권력에 미쳐 가신들과 공모하여 아버지를 내쫓아 버리고 다이묘가 됩니다
쫓겨난 아버지는 적국인 이나가와 요시모토가문으로 망명.
요시모토는 도쿠가와를 인질로 잡고 쇼군이 되려고 3만대군을 끌고 교토를 향하다가
오다 노부나가의 5천군사에게 패하고 목이 짤린 유명한 <오케하자마전투>의 당사국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경험이 있군요
후백제 왕 견훤이 셋째아들을 후계로 삼았다가
큰아들에게 쫓겨 고려 왕건에게 망명하는 이야기
그것 때문에 큰아들 신검(?) 의 군대가 결국 패퇴하지요
과거 자신들의 주군이 고려군 선봉에 서서
- 야덜아 니덜도 거시기해부러라 ~~ 어차피 거시기항게~
이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어디나 권력 앞에선 모든 관계 그것이 천륜이더라도 맥을 못추는 법입니다
그러니 전국시대입니다
아비를 쫓아내고 누이를 팔고 어머니를 인질로 보내고
형제가 칼을 겨누는
피비린내는 일상이고
배신과 야욕이 넘치는 시대.
그리고
패배했을때 까알끔하게 詩 한수 남기고 배를 가르는 시대
죽음이 미학으로 ... 존중받는 시대입니다.

은각사입니다
요시마사가 가꾼 정원
쇼군보다 한량으로 문화인으로 남길 바란모양
금각사를 본떠 지었는데 은으로 도배를 할 요량이었다나??
나중에 불교계에 헌납하여 절이 됩니다.
은각사를 지을때 모방했다는 금각사
금박으로 아름답게 지었다는데 당시 일본에 그만큼 금이 많았다는 사실~

이때부터
많은 권력자들이 금으로 궁을 장식하게 됩니다.
치매 검사해봐야 할란갑따.
욧점 정리후 3줄이하로 올리는거...